박헌영은 1950년 4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과 함께 이오시프 스탈린을 만나 "남침해 서울을 점령하면 남로당 지하조직 20만 명이 봉기할 것"이라며 전쟁을 설득했다. 하지만 계산은 빗나갔다. 남침 후 북한군이 3일간 서울에 머물렀지만 기다렸던 민중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봉기를 주도할 핵심 세력은 이미 남한 정부에 의해 무력해진 상태였다. 민심이 공산주의에서 돌아서 있었던 영향도 컸다. 6·25 직전 남한에서 시행된 농지개혁이 이유로 꼽힌다. 농촌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소작농이 전답을 보유하게 되면서 자산 불평등이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다수의 국민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이들이 아니었다. '지킬 것'이 생기자 공산주의 체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해방 후 8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는 부동산이 있다. 정확히는 '아파트'다. 근로 소득이 자산가치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격차는 과거 자작농과 소작농의 격차를 연상시킬 만큼 커졌다. 공동체 결속마저 위협한다. 특히 청년층의 박탈감이 저출생과 세대간 대립을 키운다.
아파트를 과거 농지와 같은 방식으로 몰수해 분배할 수는 없다. 가장 직관적인 해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무주택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해 중산층으로 진입하게 하는 방식이다.
다만 아파트가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의 대상이 된다는 게 문제다. 단순한 공급 확대는 도리어 갭투자 기회로 변질돼 양극화를 확대할 리스크가 있다. 이를 막겠다며 도입한 세제·금융 규제는 시장 왜곡 논란만 반복했다.
시장의 기능을 살리면서도 주택 투자가 시세차익에 쏠리지 않게 하는 대안으로 '민간영구임대주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볼만 하다. 기업이나 리츠, 연기금 등이 신규 주택을 공급하고 50년 이상 보유하며 임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을 포기하는 대신 안정적인 현금 수익을 누리는 게 가능해진다.
임차인에게는 장기 거주권을 보장한다. 합리적인 임차료 인상 기준이 마련되면 이사 걱정 없이 안정적인 주거생활이 가능해진다. 과거 자작농이 누렸던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임차인이 리츠 등을 통해 임대주택에 투자할 경우 간접적으로 주택을 보유하는 효과를 내고, 임차료 상승에 따른 부담도 일부 헤지할 수 있다. 주택소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 방식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주택 매매 차익보다 임대수익을 중시하는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정책 설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간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보유세 면제 등 세제 혜택과 함께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편으로 유지보수나 리모델링 투자를 부실하게 해 주거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국가 차원의 엄격한 관리 감독 표준이 필수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연기금과 기관투자자 등 민간이 장기 임대주택을 핵심 투자자산으로 운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네덜란드의 주거펀드인 보우인베스트는 암스테르담, 헤이그, 로테르담 등 핵심 도시권에 2025년 상반기 기준 임대주택 약 1만9000가구를 장기 보유·운용한다. 연 5.5%~7.0% 수준의 목표 수익률을 추구하면서도 99%에 달하는 입주율에 10점 만점에 7.6점이라는 양호한 임차인 만족도를 끌어낸다.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어도 충분히 투자 매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농지개혁은 소작농에게 '지킬 것'을 만들어 통합을 끌어냈다. 우리에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빼앗기지 않을 '삶의 터전'이 필요하다. 주택자산의 성격을 시세차익 중심에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주거 자본재로 바꾸는 것. 그리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권리와 주택자산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새로운 의미의 경자유전(耕者有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