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포인트
현상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 봅니다.
총 8 건
지상에서 가장 고단한 생명을 말하라면 벌새를 들겠다. 몸길이 5~20센티미터 정도의 가장 작은 새인 이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10~15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꿀을 마셔야 한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의 꿀을 섭취한다. 몸무게라고 해봤자 적게는 2그램 안팎이다. 먹이를 섭취하지 않으면 짧으면 2시간 만에 굶어 죽는다. 그래서 1초에 예순 번을 쉴 새 없이 날갯짓하면서 몸을 띄워 꽃을 찾아야 한다. 지난 1월, 쿠팡 정보 유출 사태 논란이 한창이던 날 밤늦은 시각 경기 북부에 있는 한 쿠팡 물류센터에 그런 벌새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정도의 앳된 소년부터 머리가 하얀 중년까지 다양했다. 부부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루 근무를 하면 보통 8만원을 받는데 2만원을 더 받기 위해 야간 근무를 택했다. 이들은 출석 체크를 하고 접이식 철제 의자에서 그날 할 노동을 설명 들은 뒤 업무에 투입됐다. 처음 온 사람들은 혈압 체크부터 했다. 취재를 위해 온 나도 그 무리에 포함돼 있었다.
에너지가 경제와 민생을 좌우 미·중 자국에 맞춘 정책설계 LNG 등 특정연료 의존 위험 이상 좇기보다 실사구시 필요 에너지는 민생이다. 이란 사태가 보여주듯 에너지 가격이 튀면 주유소 기름값뿐 아니라 쓰레기봉투, 포장재, 외식 물가까지 줄줄이 뛴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한국 같은 제조업 국가는 공장 가동 축소와 투자 지연, 고용 위축 등 경제 전반이 구조적 충격에 노출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교전 당사국이 아닌 나라 중 한국만큼 타격을 받은 곳은 없다"고 지적한 이유다. 에너지는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영역이다. 석유와 LNG를 자급자족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처지는 다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LNG 최대 수출국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에너지 패권을 내걸고 석유·가스·석탄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도 '깨끗한 기저전원'으로 키우고 있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망을 깐 뒤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얹는다는 포석이다. 반면 석유·LNG 수입국인 중국은 막대한 달러를 에너지 구입에 소모한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적어 원자력 개발이 불가피하다. 최근 주한 프랑스 대사를 만났는데 그 나라엔 원전 55개가 있지만 지방마다 원전을 유치하려고 한다더라. 왜냐하면 원자력이 고용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 1989년 11월 28일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전반대단체 회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원자력 업계에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른바 '목포 선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후 원전에 진심이었다. 규모 7의 지진에 견딜 정도로 안전성이 개선된 한국형 원전 모델 APR1400은 노태우 정부 때 개발을 시작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완성했다. 김대중 정부의 친원전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 계승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여름 전북 부안은 전쟁터 같았다.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에 반대해 주민들과 전국의 환경단체·노동단체·종교인들까지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시위대는 "핵은 죽음이다", "핵폐기장이 들어오면 기형아를 낳는다"는 선동적인 슬로건을 내걸었다.
2003년 3월 7일 중국 칭다오에 도착해 시골 기차역같은 공항을 빠져나와 빵차(소형 승합차)를 탔던 기억이 난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급성장하는 중국을 알고 싶어 한국 종합상사를 그만두고 칭다오에 있는 한국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당시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이 칭다오 외곽 청양구에 진출해 있었는데, 그때 청양구는 교통량이 적어 도로에 차선도 안 그려져 있을 정도로 시골이었다. 필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액세서리 회사의 무역부에서 현지에서 생산한 귀걸이·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미국, 유럽에 있는 바이어에게 수출하는 업무를 했다.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1970년대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번창하던 액세서리 업체들은 대부분 1992년을 시점으로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하고 물류 여건이 좋은 칭다오로 이주했다. 노동집약적인 전통 제조업이 중국을 가공무역기지로 활용하려던 때였다. 필자가 일하던 액세서리 업체는 중소기업이지만,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1000여명에 달했다.
AI(인공지능)와 휴머노이드 등이 화두가 된 글로벌 산업계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함축된 한 장면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서울 강남에서 치맥 회동을 하고 게임축제 행사장에서 포옹을 하며 마이크를 잡았던 지난해 10월 바로 그 순간이다. 15년만에 다시 서울에 왔다고 한 젠슨 황 CEO는 한국과의 첫 인연으로 1990년대 거의 무명이었던 자신에게 온 어느 기업인의 편지를 소개했다. 그가 편지에는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한 한국에서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올림픽을 열자'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고 하자 옆에 섰던 이재용 회장이 '제 아버지 얘긴데요'라며 발신인은 고 이건희 회장이었다고 확인시켜줬다. 이건희 회장의 제안은 현실화됐고 당시 젠슨 황 CEO이 꾸렸던 기업은 세계 최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세계 1위 시가총액 4조4904억 달러(약 6698조원, 3월 기준))이 됐다.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됐던 지난해 가을에 비해 올해 3월은 미국-이란 전쟁으로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한 교회가 이웃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근처로 이주해 임대료가 오른다. 임대료 상승이 음식 가치를 상쇄할 때까지 이주가 이어진다. 궁극적으로 이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한다. 더 높은 임대료를 청구하게 되는 집주인만 이익을 본다. ' 윈스턴 처칠이 했다는 말이다.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공저 '세금의 흑역사'에서 인용)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설명하기 위해 든 비유다. 물론 우리 사정과 맞지 않는다. 식사 나눔을 해 온 복지단체가 건물을 증축하려고 하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노숙인이 몰려들어 집값이 떨어진다"며 민원을 제기했다는 뉴스가 갑작스럽지 않다. 하지만 경제적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혜택과 부담이 옮겨가는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적용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서울의 대기업이 고연봉을 보장한다. 노동자들이 그 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줄을 선다. 그곳에 출퇴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집의 임대료가 오른다.
브라질 광구 투매 때 세계는 자원 쇼핑 중·일은 차익 한국은 적폐 몰아 매도 자원개발 단절…네트워크·인력 붕괴 원자재값 급등에 공급망 위기 되풀이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는 2010년대 중반 부패스캔들로 재무위기를 맞았다. 현금이 절실해 자산을 투매해야 했다. 2014년 6월 배럴당 115달러였던 브렌트유가 2016년 1월 27달러까지 하락하던 시기였다. 헤알화는 같은 기간 달러당 2. 3헤알에서 4. 1헤알로 떨어졌다. 이 틈을 타 노르웨이의 에퀴노르(Equinor)는 카르카라 유전을 25억 달러에 사들였다. 정점 대비 1/8 수준이었다. 개발비용을 포함한 이 유전 프로젝트의 현재 가치는 100억~150억 달러 이상이다. 당시 중국과 일본 기업도 페트로브라스의 자산을 매입했다. 중국 CNPC와 CNOOC 등은 리브라, 부지우스 광구의 지분을 확보했다.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심해유전들이다. 일본 미쓰이는 페트로브라스의 자회사 가스페트로 지분 49%를 4억9000만 달러에 인수해 차익을 거뒀다.
"정철근씨는 부의 세습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요?" 1991년 10월 필자는 당시 인기직장인 종금사의 최종 면접에서 사장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 회사의 사장은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다. 자기소개서에 순진하게 1·2학년때 학생운동을 했다고 적었던 터라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의 세습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는데도 핏줄이라는 이유로 기업을 물려받는다면 계급사회인 봉건체제와 다를 게 뭡니까. " 35년 전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이후 한국이 부자나라가 됐는데도 자산·소득 불평등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버지가 8살 때 돌아가셔서 동생들 학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흙수저' 출신이다. 하지만 월급을 알뜰히 모으니 결혼 3년만에 서울 동작구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당시 대기업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세금을 별로 안떼 실수령액이 많았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흙수저' 출신이라도 중산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