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칼라일을 꿈꾸는 한국 증권사들

김명룡 증권부장
2026.09.21 05:30

월가 투자명가들, 국내 증권사에 손짓
제조 이어 자본시장도 수출산업 역할
본지, 韓 증권사 해외 활약 탐방키로

"이젠 월가에서 먼저 손을 내밉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최근 한 말이다. 그는 사석에서는 "회사를 칼라일처럼 해외에서 돈을 버는 금융사로 키우고 싶다"고 했고 "아시아에서 제일 돈 많이 버는 증권사가 되겠다"는 목표까지 내걸었다. 칼라일은 1987년 미국 워싱턴에서 출발해 운용자산 4850억달러(약 670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중 하나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중동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투자 명가로 꼽힌다. 좁은 국내 시장을 넘어서겠다는 포부가 예사롭지 않다.

허황된 목표만은 아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KIS 나이트 인 뉴욕'에서 김 사장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가장 먼저 손잡고 싶어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 잡기 위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협력을 요청하던 처지였지만 이제는 글로벌 기관이 먼저 공동사업을 제안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칼라일과는 대체투자 협력을 자금 위탁운용으로 넓히기로 했다. 김 사장이 말한 '칼라일'은 이미 손잡은 상대다. '칼라일처럼'을 넘어 '칼라일과 함께' 커지는 셈이다.

한투증권만이 아니다. 미래에셋증권은 26개 현지법인·3개 사무소로 국내 최대 해외 네트워크를 갖췄다. 2024년 인도 증권사 쉐어칸을 인수해 관련 법인을 4곳으로 늘렸고 홍콩에서 선보인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는 통합 투자플랫폼으로 키울 구상이다. 2022년 벤처펀드로 스페이스X에 투자한 약 4000억원은 올 상반기에만 2조5659억원의 평가이익을 냈다. 그 힘으로 1분기 순이익 1조19억원에 이어 2분기 1조9052억원을 거두며 업계 최초로 두 분기 연속 1조원을 넘겼다.

업계 전체로 봐도 흐름은 같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16개 증권사가 지난해 말 기준 15개국에서 93개 해외점포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만 13개가 순증했고 신설 점포 중 미국(4개)·홍콩(3개)이 절반이었다. 해외 현지법인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4억5580만달러(6540억원)로 전년보다 67.8% 늘었다. 현지법인 83곳 중 51곳이 흑자다.

반도체·자동차·조선만 수출역군은 아니다. 증권사가 뉴욕과 홍콩, 호치민에서 낸 6540억원도 외화벌이다. 공장 대신 사무실을 해외에 짓고 물건 대신 자본과 정보를 수출하는 산업이 자본시장이다. 제조업이 수출의 얼굴이었다면 이제 금융도 그 대열에 세울 때다.

그늘도 있다. 아시아 점포가 66개(71.0%)로 가장 많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합쳐 1000만달러 손실을 냈다. 수출기업이 관세·환율·현지 규제와 씨름하듯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금감원도 중동 상황 장기화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들어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점포 수를 늘리는 것과 글로벌 기관이 먼저 찾는 파트너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식 중개에 머물던 초기와 달리 지금은 IB(투자은행)·PI(자기자본투자)·자산운용까지 사업모델을 다변화해야 살아남는다. 자본시장을 수출산업으로 본다면 지원의 문법도 달라져야 한다. 금감원이 예고한 애로사항 청취·지원이 제조업 수출기업 못지않은 정책적 뒷받침으로 이어져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이번주부터 뉴욕, 런던, 홍콩, 호치민 등 국내 증권사의 해외 현장을 기자들이 직접 찾아 임직원들의 꿈과 땀을 기록하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낯선 시장에서 현지어를 배우고 새벽부터 시황을 챙기며 고객을 늘려온 이들의 발자취가 곧 6540억원이라는 숫자의 다른 이름이다. 칼라일을 꿈꾸는 여의도가 어디까지 왔는지 현장에서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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