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새 물길을 여는 슈퍼컴퓨터 '한강'[청계광장/이식]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입력 2026.11.05 02:00 수정 2026.11.05 02:00

6호기 한강 GPU 품귀로 2년 늦게 가동
계산자원 부족한 과학계에 '단비' 역할
핵융합,신소재,기후변화 연구 도약 기대

이번 주 국가슈퍼컴퓨터 6호기 '한강'의 공식 가동식이 열렸다. 당초 계획보다 약 2년 늦어진 출발이다. 역설적으로 그 배경에는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발전이 있었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전 세계적으로 GPU 수요가 폭증하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도입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한강'이라는 이름은 대국민 공모로 결정되었다. 쉼 없이 흐르는 강물은 방대한 데이터의 흐름을, '한강의 기적'은 새로운 도약의 희망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의 이름까지 겹친다.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문화적 성취를 함께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한강은 8496개의 엔비디아 고성능 GPU를 탑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슈퍼컴퓨터다. GPU는 원래 컴퓨터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병렬처리 능력 덕분에 인공지능과 과학기술 연구의 핵심 장치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GPU가 같은 계산에 강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에도 속도에 특화된 스포츠카와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트럭이 있듯, GPU도 용도에 따라 다르게 제작된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은 정밀도가 다소 낮더라도 방대한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GPU를 활용한다. 반면 기후변화 예측, 핵융합, 신소재 개발 등 과학기술 시뮬레이션에서는 작은 오차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높은 정밀도가 요구된다. 한강에 탑재된 GH200은 이러한 고정밀 계산에 강점을 가진 GPU다. 흥미롭게도 GH200은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최신 B300보다 64비트 배정밀도 계산에서는 약 28배나 빠르다. 최신 GPU가 반드시 모든 계산에서 더 빠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차이는 한강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정부는 거대언어모델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강은 이와 달리 대규모 과학기술 시뮬레이션과 과학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 연구를 지원하는 국가 연구 인프라다. 핵융합로 내부의 플라스마 움직임을 계산하고, 새로운 물질의 특성을 예측하며, 지구의 기후변화를 정밀하게 모사하는 연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면 연구를 가속하거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가능성을 크게 넓힐 수 있다. 이른바 'AI for Science'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인공지능 열풍에 밀려 출발이 늦어진 슈퍼컴퓨터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국내 과학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게 된 셈이다.

물론 슈퍼컴퓨터가 도입되었다고 과학적 성과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천 개의 GPU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과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특히 CPU 기반 컴퓨터용으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GPU 환경에 맞게 전환하고, 연구자들이 새로운 계산 환경에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연구자를 유치하고 이들이 성과를 창출하도록 연구 생태계를 확장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슈퍼컴퓨터의 진정한 가치는 장비의 성능이 아니라 이를 활용해 만들어내는 연구 성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년의 지연은 분명 아쉽다. 그러나 계산 자원 부족으로 연구에 제약을 받아온 과학자들에게 한강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세계 몇 위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그 컴퓨터로 어떤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느냐이다.

한강은 이제 막 흐르기 시작했다. 과거 '한강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했다면, 새로운 한강은 과학기술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식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사진=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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