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각 분야 전문가들이 AI, K뷰티, 개인정보보호, 경영전략 등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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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의 51. 8%가 이미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절약한 시간(주당 평균 1. 5시간)은 개인업무의 효율을 높였을 뿐, 기업 차원의 생산성 향상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기업의 제도화된 AI 도입률은 여전히 10%에 미치지 못한다. 조직이 AI로 일하는 개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이다. 개인의 생산성이 조직의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전환의 공백'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간극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미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는 "컴퓨터 시대는 어디에나 보이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일찍이 1987년 꼬집었다. 컴퓨터가 사무실에 보급된 뒤에도 한동안 생산성이 정체된 것은, 기업들이 업무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구조를 기술에 맞게 재설계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때문이다. 지금 AI도, 기술보다 조직변화가 더디다는 점에서 당시와 닮았다. 문제는 전환속도와 방식을 결정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통계수치가 보여주지 못하는 곳에 있다.
인공지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세계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이 인공지능을 매일 쓰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똑똑한 만능의 비서이자 동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컴퓨터 장비를 갖추는 데에 비용이 필요하다. 이 고가의 장비를 운영하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전기료, 컴퓨터 냉각비용 등 다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또한, 인공지능이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텍스트와 사진, 동영상, 프로그램 코드 등을 학습해야 하며 여기에도 비용이 필요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가 늘 부족하단 점이다. 연구자들은 이 부족한 데이터들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다. 즉, 인공지능으로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이 데이터를 이용해서 다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을 '데이터 근친교배(data inbreeding)'라고 부른다. 세계사에는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야기가 있다.
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생성형 인공지능(AI) 이용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피해도 확산되고 있다. 2024년 미국에서는 14세 소년 수웰 세처 3세가 AI 챗봇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 3월에는 캘리포니아 배심원단이 메타와 구글이 청소년의 중독을 유발하는 플랫폼 설계를 유지해 정신적 피해를 초래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올해 4월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41%가 AI 챗봇의 답변을 행동으로 옮긴 경험이 있으며, 77. 7%는 챗봇의 답변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 사건들은 청소년 보호를 위한 SNS와 AI 챗봇 사용 금지 등의 규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SNS상 유해 콘텐츠뿐 아니라 플랫폼의 설계 방식에도 있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야간 알림,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체류시간과 참여를 늘리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충동 조절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청소년에게는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학 교과서 첫 장에는 늘 익숙한 라틴어 구절이 등장한다.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이라는 뜻이다. 미시경제학의 거장 알프레드 마셜은 복잡다단한 현실을 잘라내 수요와 공급이라는 명쾌한 분석 모형을 만들어냈다. 변수 하나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통제하는 방식이다. 이 깔끔한 도식은 경제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현실 시장에 이 가정을 그대로 대입하면 치명적 오류가 발생한다. 현실 경제에서 '기타 조건'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얽히면서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 역시 정태적인 균형판이 아니다.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만을 낳는 단순한 세계가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중층 결정'은 오늘날 부동산시장을 읽는 핵심 키워드다. 여러 원인이 겹겹이 쌓여 나타난 복합적 결과라는 의미다. 복잡한 현상을 단 하나의 요소로 줄여 설명하려는 '환원주의 오류'는 경계해야 한다. 특정 변수 하나만을 주범으로 지목하거나 과대 포장해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위험한 이유다.
국가는 왜 형벌을 부과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범죄와 형벌의 관계는 인류 역사상 법질서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탐구되어 온 가장 오래된 법철학적 과제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현대 형법에 이르기까지 형벌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인류의 오랜 경험은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아무리 엄한 처벌을 가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 형법에서는 '응보주의'에서 '예방주의'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이미 발생한 범죄를 응징하는 것보다 같은 잘못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전에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의료 분야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1999년 미국 의학연구소(IOM)가 발표한'To Err is Human' 보고서는 의료인의 실수로 매년 많은 환자가 사망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의료계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를 처벌하자, 의료진은 실수를 숨기게 되었고 동일한 사고는 반복되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같은 씨앗이라도 토양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열매를 맺는다. 법도 다르지 않다. 다른 사건에서 옳았던 논리를 맥락도 따지지 않은 채 새로운 문제에 옮겨 심으면, 기대했던 결론 대신 또 다른 갈등을 낳기도 한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쟁과 최근 대법원 판결은 우리에게 바로 이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노동법은 언제나 두 개의 시간 위에 서 있다. 하나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밀어붙이는 현실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판례와 원칙이 축적해 온 법의 시간이다. 좋은 입법은 이 두 시간을 연결하지만, 그렇지 못한 입법은 둘 사이의 간극을 오히려 키운다. 노란봉투법의 출발은 분명했다. 불법파업을 둘러싼 과도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안는 현실을 개선하고, 복잡해진 간접고용 구조에 맞게 노동법을 현실화하자는 문제의식이었다. 그 방향성 자체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두 질문이 하나의 답으로 성급하게 연결되는 일이 벌어졌다.
학기가 끝났다. 시험도 끝났고 성적도 매겨졌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제부터다. 이번 학기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나. 우리는 그 배움을 어떻게 확인했는가. 교육에서 평가는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을 갖는다. 학생은 평가를 생각하며 공부하고, 교사는 평가를 염두에 두고 가르친다. 그래서 'Teach to the Test'라는 말도 생겼다. 평가를 바꾸지 않고 교육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좋은 평가는 교육목표와 맞닿아 있어야 한다. 창의성을 기르겠다면서, 정답 하나를 찾는 객관식 시험만으로 평가한다면 교육의 방향 자체가 흔들린다. 협력을 강조하면서 상대평가로 학생들을 줄 세우면 학생들은 협력보다 경쟁을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목표와 교육내용, 교수·학습, 평가는 하나로 정렬돼야 한다. 최근 생성형 AI의 확산은 평가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교육 생태계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AI를 활용해 정보를 탐색하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며, 사고를 확장한다.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질문하고 탐색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비자, 지역사회까지 함께 책임지는 사회적 존재인가.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에게 이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단순히 온라인 유통의 성장과 소비 패턴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과도한 차입에 의존한 인수, 단기 수익을 우선한 경영, 지속적인 투자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무엇보다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다 투자수익을 앞세운 사모펀드식 경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사모펀드(PEF)는 원래 자본시장의 중요한 축이다. 부실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경영혁신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사모펀드의 성공적인 기업 투자 사례는 적지 않다. 문제는 투자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탐욕으로 변질될 때다. 기업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잃고, 자산은 매각되며,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과 디지털 전환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결국 남는 것은 경쟁력을 잃은 빈껍데기 기업이다.
미국 나스닥에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상장이 잇따르고 있다. 6월 퀀티누엄에 이어 7월에는 핀란드의 IQM도 상장되면서 미국 증시에 상장된 순수 양자컴퓨터 기업은 여섯 곳으로 늘어났다. 한동안 인공지능(AI)에 집중됐던 자본시장의 관심이 양자컴퓨터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6월 23일 미국 에너지부(DOE)는 2028년까지 세계 최초의 과학 연구용 오류내성(Fault-Tolerant) 양자컴퓨터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과학과 산업의 문제 해결 방식을 혁신하겠다는 '퀀텀 제네시스(Quantum Genesis)'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양자컴퓨터의 큰 문제는 오류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작은 잡음에도 계산 결과가 쉽게 바뀌고, 한 개의 안정적인 논리 큐비트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물리 큐비트가 필요하다. 오류내성 양자컴퓨터는 양자 기술의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은 2028년이란 구체적인 목표를 통해 기술적 자신감과 국가 차원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계획이 양자컴퓨터 개발 자체보다 이를 활용해 과학과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은 약 10년마다 새로운 세대로 발전해 왔다. 1980년대 1G(generation)는 음성통화만 가능했으나, 1990년대 2G는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문자메시지를 가능하게 했다. 2000년대 3G는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했고, 2010년대 4G는 스마트폰을 통해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대를 열었다. 5G는 초고속·초저지연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 팩토리 같은 산업 서비스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처럼 이동통신은 음성에서 데이터·멀티미디어로, 다시 산업·AI 융합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왔다. 2030년 상용화가 예상되는 6G는 단순히 인터넷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은 AI와 통신의 융합을 6G의 핵심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또한 통신망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센서 역할을 하고, 지상 기지국뿐 아니라 위성까지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끊김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한마디로 6G는 빠른 통신을 넘어 AI가 작동하는 지능형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AI와 6G 융합은 두 방향으로 이뤄진다.
돈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자본 역시 수익률을 좇아 이리저리 움직인다. 돈에는 칸막이가 없다. 최근 관측되는 증시 자금의 부동산 시장 진입도 이 유동성의 속성이다. 하지만 이를 '자본의 선순환'으로만 포장하기는 어렵다. 증시 호황의 과실이 금융시장에 장기 자본으로 머물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의 자본 공급원이 되면서 가격 불안으로 이어지는 부메랑이 될 수 있어서다. 자금의 이동은 숫자로 드러난다. 올해 1~4월 주택취득 자금조달계획서 분석 결과 주택 매입에 쓰인 주식·채권 매각 대금은 3조 7255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주택시장의 핵심 수요층인 30대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이들은 주식과 채권을 가장 적극적으로 팔아 집을 샀다. 투자 지능이 남다른 이들은 금융상품인 주식과 준 금융상품인 아파트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자산이라는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철저하게 저울질한다. 주식과 부동산을 오가며 수익률에 따라 민첩하게 베팅하는 세대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은 부동산 친화적 세대보다 투자 친화적 세대에 더 가깝다.
정년 65세 법제화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인구 구조의 시계는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빠르게 흐른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와 국민연금 수급 연령의 미스매치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년 연장은 선택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어떤 속도로 할 것인가"다. 그러나 노동시장과 기업의 시계는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여전히 연공급 중심이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5년 연장하는 것은 고임금 구간을 5년 늘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계는 임금 유지와 일괄 상향을, 경영계는 재고용과 임금 조정을 주장하며, 청년층은 신규 채용 축소를 우려한다. 누구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 방식으로는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일률적 임금피크제다. 일정 연령이 되면 직무와 무관하게 임금을 깎는 방식은 수용성과 성과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만 줄어드는 구조는 자존감을 훼손하고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