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출신 안철수,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 제동…이유가?

이상배 김세관 박경담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기자
2015.01.15 10:44

[the300][런치리포트-신의료기술평가, 무력화 논란(종합)]

갑오년 세밑이었던 지난달 30일. 차기 유력 대통령 선거 후보이자 의사 출신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부의 한 규칙 개정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기도 한 안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보건복지부가 시행규칙 개정으로 국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국민의료비 상승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의료영리화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고 경계했다.

안 의원이 문제삼은 정부의 규제 완화 방안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 일명 '신의료기술평가 규제 완화 방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은 새로운 의료기기와 의술은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도 건강보험 요양급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는 의료기기와 이를 통한 의학 기술이 새로운 것이란 공인을 받으려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

인공판막이 아닌 돼지 심장에서 얻은 천연판막과 특수 '카바링'을 통해 판막 기능을 복원시키는 원리를 적용했던 심장수술 '카바수술(대동맥판막성형술)'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인공판막수술처럼 피가 뭉치지 않아 환자가 평생 항응고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돼 획기적이라는 평을 받은 수술 방식이었지만 2012년 국내 시술이 금지됐다. 안전을 담보하지 못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료기술, 특히 새로운 기기나 기술 및 시술 방식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 아무리 효율성이 커도 시술 이후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상용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평균 1년이나 걸리는 '신의료기술평가'가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 일부 의료기기와 기술의 경우 해당 절차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시행규칙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같은 해 12월9일까지 복지부에 의해 입법예고 돼 개정을 위한 행정절차를 마쳤으며 현재 법제처의 심사단계를 밟고 있다. 이달 안에 시행에 들어간다는 것이 복지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안 의원을 비롯한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크게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원안대로 시행규칙 개정안이 통과되면 새로운 의료기기와 이를 활용한 의료기술이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 시중에서 판매 및 시행 되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정부와 맞서고 있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복지부가 모든 새로운 의료기기에 대해 '신의료기술평가'를 면제해 주려는 것이 아닌 것은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기의 안전사고 가능성이 0.1%라도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복지위 여당 소속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이같은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와 관련, '신의료기술평가'를 수행하는 NECA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평가위원들이 대부분 전문의로 구성돼 있어 제약업계나 의료기기 업계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회의 과정도 불투명해 이에 대한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의료기술평가' 뭐길래...사실상 폐지?

새로운 의료기기에 의한 의료기술 및 시술 방식이 등장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세 단계의 검증과정을 거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품목허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건강보험급여 결정이다.

◇3단계 신의료기술 검증 절차

식약처의 품목허가는 신의료기기의 자체를 평가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어 바늘이 최첨단 소재로 개발된 주사기가 있다고 가정하면 최첨단 소재가 인체와의 반응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한다.

다음 절차인 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기를 활용한 의료 행위가 평가 대상이다. 앞서 말한 주사기를 평가 대상으로 한다면 엉덩이에 주사를 놨을 경우, 팔에 놨을 경우 모두 안전성과 유효성에 이상이 없는지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심평원의 건보 급여여부 결정은 임상시험과 신의료기술평가를 마친 의료기기 및 기술의 경제성을 평가해 건강보험 의료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다.

◇신의료기술평가 줄이면 평가 1년 줄어

그런데 최근 두 번째 검증 과정인 '신의료기술평가'가 '생략' 논란에 휩싸여 의료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두 번째 검증 절차인 '신의료기술평가'를 유예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신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 행위에 대해 조기에 건강보험 요양급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가치평가제도 기준을 개선하려는 목적"이라며 "제4차 무역투자활성화 대책의 일환이자 규제완화 차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식약처 품목허가와 심평원의 건보 급여 평가에 각각 80~90일이 소요되는데 반해, 신의료기술평가는 평균 1년이 걸려 그 동안 업계로부터 '신의료기술평가' 자체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러나 입법예고 발표 직후 해당 조치를 바라보는 야당·시민단체의 반응이 곱지 않다. '사실상 모든 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 판매되는 길을 정부가 열어줬다'는 것이 야당·시민단체의 의견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무엇?

'신의료기술평가'는 2006년 의료법 53조에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문구가 만들어져 2007년 시행이 결정된 제도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비판을 수용하고 제도화 했다. 동시에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기술의 건보 급여 여부를 판가름하는 역할도 한다.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보장돼 신의료기술로 평가되면 곧바로 건보 급여 심사 대상이 된다. 하지만 기존 의료방식과 차이가 없는 방식의 의료기술이라고 판단이 되면 심평원의 심사를 받을 것도 없이 기존 의료기술의 급여 결정 방식을 따르게 된다.

신의료기술평가, 외국은 어떻게 하나보니…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해 의료보험 급여 지급 등이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신의료기술평가'(HTA,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제도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 도입돼 있다.

외국에서는 통상 '의료기술평가'(HTA,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로 불리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임상 결과와 문헌정보 등을 주된 평가 근거로 삼는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신의료기술평가 업무를 함께 맡고 있는 반면 선진국들은 대개 신의료기술 평가를 전담하는 기관을 따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가장 앞서 도입한 곳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다. 1960년대말부터 의회에서 논의가 시작돼 1972년 기술평가국(OTA, 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 설립과 함께 의료기술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수차례의 조직 개편을 거쳐 1999년 이후에는 의료조사평가국(AHRQ, 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가 의료기술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의료개혁 정책의 하나로 보건의료 분야 연구비로 11억달러(1조2000억원)의 예산을 투자했고, 이 가운데 4억달러(4400억원)가 의료기술평가 역량 강화 차원에서 AHRQ에 투입됐다.

유럽에서는 1987년 스웨덴의 '의료기술평가위원회'(The Swedish Council on Technology Assessment in Health Care)를 시작으로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순으로 의료기술평가 기관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초에는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채택한 유럽국가들끼리 '코크란 연합'(Cochrane Collaboration)을 만들고 체계적인 의료기술평가를 위한 문헌고찰 방법론에 대한 공유 등이 이뤄지기 시작됐다.

이후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를 중심으로 총 35개국이 의료기술평가기관 연합체인 '유럽 의료기술평가 네트워크'(EUnetHTA, European network for HTA)를 꾸리고 활발한 정보 공유에 나서고 있다.

현재 EUnetHTA는 약제의 종류에 따라 신속평가(rapid assessment)와 완전평가(full assessment) 가운데 한가지 방식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의료기술평가 모델을 개발 중이다.

영국도 1999년 설립된 '국가의료수월성기구'(NICE, 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에 의약품·의료기기·의료행위 등에 대한 의료기술평가 등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

한편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14개국은 1999년 국제적인 의료기술평가기관 네트워크인 '유로스캔'(EuroScan)를 조직하고 이를 중심으로 신생 약재, 의료기기, 의료기술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도 2013년 10월 아시아 최초로 유로스캔에 가입해 현재 활동 중이다.

신의료기술평가 면제.."안전 문제 없어" vs "업계 이윤 위한 것"

의료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 면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는 단어 사용에서부터 드러난다. 평가 면제를 놓고 보건복지부는 '간소화'라고 하는 반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생략'이라고 표현한다.

양 측이 가장 크게 부딪히는 부분은 '안전성'이다. 신의료기술은 의료계에서 이전에 통용됐던 방법·목적과 비교해 새로운 기술이기에 인체에 끼치는 영향을 사전체크하는 게 필수다. 환자가 신기술의 '마루타'가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느 선까지 평가하면 안전성이 확보되냐다.

기존 과정은 신의료기기 개발→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보건의료연구원 안전성·유효성 평가→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 결정 등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연구원 평가 면제를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식약처 심사로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안전성이 확보된 제품만 요양급여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신의료기술의 사용대상과 목적 등이 뚜렷할 때 식약처 품목 허가를 허용할 것"이라며 "위해요소가 있는 경우 요양급여 결정 과정 중간이라도 직권으로 신의료기술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반대 측은 식약처와 보건의료연구원이 실시하는 평가의 성격이 다르기에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식약처는 의료기기의 물리화학적 특성·생물학적 안전 등 실험실적 안전성을 평가한다"며 "반면 보건의료연구원은 시술을 받은 환자의 부작용·합병증 및 사망 사례를 보기에 식약처 평가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정작 신기술의료평가가 면제되는 경우는 적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식약처 품목 허가 뒤 비교 임상실험 실시 및 재심사를 거쳐야 신기술의료평가 유예에 해당한다"며 "비교 임상실험은 수십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돼 평가 면제 받는 신의료기기 및 기술은 1%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규제 완화라고 하지만 결국 혜택을 보는 것은 수십억원의 비교 임상시험을 시행할 수 있는 부자업체들 아니겠느냐"며 "의료영리화의 일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평가 면제에 따른 신의료기기 조기시장 진입을 두고도 양 측은 엇갈렸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신의료기기 조기시장진입을 허용한 제4차 무역투자활성화 대책 후속조치로 추진되는 것이다"며 "의료기기 업체·신기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과 안전성이 소홀해질까 걱정하는 쪽 모두 고려해 개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의료기기 업계는 신의료기술평가 때문에 의료기기의 출시가 1년이나 늦춰져 수익에 큰 타격을 입는다고 주장했는데 평가 폐지는 전적으로 업계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의료선진국인 미국은 13~15개월, 영국은 2~3년 정도 신기술 평가를 한다"고 설명했다.

의료비 급등 역시 논쟁의 한 축이다. 시민단체 쪽에선 신의료기술평가가 사라지면 의료비가 폭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11년~2013년을 보면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에서 반려되는 신의료기기는 29건 중 10건에 달했다. 이에 평가 면제가 현실화되고 반려가 줄면 대부분 비급여인 신의료기술 건수가 늘어 국민 부담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의료비 폭등이 개연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식약처 허가를 받아 환자에게 적용될 신의료기술의 모수 자체가 적은데다 실제 수술 현장에서 의료진은 근거가 확립된 기존 기술을 택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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