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보고서 채택만을 남겨 두고 있다. 지난 2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선 후보자 개인의 큰 흠결은 나오지 않았고, 질의는 주로 재산형성과정에 집중됐다.
후보자가 '억세게 운 좋은 재테크'로 19억여원의 재산을 형성했고, 현재 호텔 스포츠센터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는 점이 주로 문제가 됐다.
20여년간 판사로 계속 근무해 온 후보자는 급여 외에 다른 수입은 없었다. 보통 판검사 월급이 많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초임 판검사는 250만원정도를 받고 수당을 다 합해도 300만원 안팎이다. 이정도면 대기업 신입사원과 별 차이가 없다. 변호사업계와 비교하자면 판검사 20년차 정도가 돼야 비로소 대형로펌 신입 변호사랑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판검사는 물려받은 재산없이 급여로만 살면 ‘부자’가 되는 길은 없다. '스폰서 판검사'가 생겨나는 이유는 판검사들이 공직에 대한 '사명감’만으론 만족 못하고 ‘부자’가 되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벤츠를 선물로 받는 여검사가 나오고, 사채업자에게 돈을 받는 판사가 구속되기도 한다.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맥쿼리인프라펀드’를 처음 투자한 것은 2009년이다. 2009년은 맥쿼리의 수익구조가 비난받기 전이다. 2012년경부터 민자사업의 수익보전구조 등이 지적됐고 2013년에야 지하철 9호선 소송 등으로 구체화됐다. 후보자는 수익구조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지자 항소심까지 가면 고등법원 판사인 본인이 맡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펀드 전량을 팔았다.
펀드 배당금으로 1억여원, 주가상승으로 1억4000여만을 벌었다. 펀드 매수·매도과정에선 시기와 물량을 적절히 나눠 '분산매매원칙'을 지켰다. 1차 거래라 볼 수 있는 2009년 3월부터 4월사이 한 달간 5만2480주를 약 5000~2만주씩 나눠 매입했다가 6월경 3차례에 걸쳐 전량 매도했다. 2차 거래는 이후 9월부터 12월사이 석달 간 다시 약 5000~2만주씩 나눠 매입해 약 8만주를 계속 장기보유하다 2013년 6월경 6번에 걸쳐 매도했다.
약 4년에 걸친 장기투자다. 1차 보유기간이 짧은데, 단기간에 펀드가 10% 급등하자 바로 팔았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오를거라 생각하고 2차거래엔 장기보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절묘하게도 매입단가는 4000원대 초반이고 4년 뒤 매도단가는 6000원대다. 2차거래시 4억원정도를 투자했고 5억5000만원에 팔았다. 배당은 배당대로 1억여원 받고, 주가상승까지 합하면 4억원 투자해 2억 5000만원을 번 셈이다. 수익률이 60% 를 넘는다.
그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선박펀드'에도 투자해 연 9% 의 수익을 올렸다. 다른 주식도 일부 샀지만, 대부분 맥쿼리와 선박펀드에 투자했다. 재테크에 어두운 이들에겐 모험적인 '투기'로 보이겠지만 '인프라·선박'펀드는 원금 상실 가능성이 적고 배당이 큰 매우 안정적인 투자수단이다.
타워팰리스 매입과정은 다소 과감했다. 1999년은 IMF여파로 아파트 가격이 급락했던 때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타워팰리스도 미분양됐다. 그럼에도 후보자는 당시로선 최고가 아파트를 5억5000만원에 샀다. 물론 IMF극복선언(1999년 11월)직후부터 타워팰리스를 포함한 강남아파트 시세는 급등했다.
그렇다고 후보자가 주식투자를 매일 하거나, 투기꾼들처럼 아파트를 여러 번 사고 팔 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후보자의 재산형성과정은 '투기'라기 보다는 ‘성공한 재테크'라고 보는 게 맞다.
(후보자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경제기사만을 읽고 안정적 투자처라는 '인프라펀드'에 돈을 묻어 '배당금'으로 연간 2000만~3000만원을 받았다.
이점이 의원들에겐 공격감이 됐다. 자산 19억원이면 강남에선 부자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지만 국민 일반에겐 최상위권임은 분명하다.
청문회과정을 통해 후보자는 ‘재테크 달인 판사’라는 ‘레테르’가 붙었다. 여기엔 은연 중 ‘재테크’와 ‘판사’는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가 된 5600만원짜리 특급호텔 스포츠센터 회원권도 호텔내에 있는 게 아니라 타워팰리스 단지내에 있다. 서민은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건 사실이지만, 되팔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자녀 학자금 대출은 요건이 돼 대출받은 것이다. 19억원 자산의 먹고 살만 한 판사라고 자식 교육을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지 말라는 건 과도하다. 일정 자산규모를 넘는 공무원에겐 학자금대출이 금지돼 있다면 모르겠지만, 자격이 돼 받은 걸 받았다고 나무라는 건 지나치다.
위 모든 재테크 과정을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후보자는 사과했다. 본인의 꼼꼼한 ‘재태크’가 부적절했다는 사과는 오히려 고위공직자 예비후보들에게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지금도 대법원은 법원 밖에서 대법관후보를 찾으려 해도 인사청문과정을 통과할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단 핑계를 대고 있다. 냉정히 말해 이 후보자 정도의 재테크가 '결격사유'가 된다면 재야의 소위 ‘진보’성향 변호사들 중에서도 인사청문에 응할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진보적이고 깨끗하다는 '민변'원로 변호사들도 '재산'은 '서민적 규모'가 아닌 경우가 많다.
‘국민 정서’가 문제라면 우리 국민들의 정서는 ‘조무제 전 대법관’처럼 법관 재산공개에서 '꼴찌'를 하거나 모아 놓은 재산이 전혀 없는 소위 ‘청빈’판사만을 대법관직에 허락하는 것일까.
아무리 높은 '대법관'이라도 집에선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빠다. '청빈'은 스스로가 원한다면 모를까. 남에게 강요하는 건 무리다.
무분별한 ‘부자 혐오’는 무분별한 ‘정치 혐오’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도움 안 된다. 정당한 재테크로 돈을 모아 자식에게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이 후보자가 5세 자녀 명의로 주식을 사놓고, 예금을 만들어 놓은 것은 '증여한도'라는 ‘절세'수단을 최대한 이용한 것일 뿐 '죄악’이 아니다. 언론이 자주 소개하는 절세 및 자녀 경제교육 방법이기도 하다.
매년 어린이 날이면 ‘어린이펀드·저축·보험’에 눈길이 가는 부모라면 이 후보자를 욕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경제기사만 보고 ‘선박펀드’와 ‘맥쿼리인프라펀드’에 투자한 안목을 부러워하는 게 ‘부자 아빠·엄마’가 되는 길 아닐까.
금감원이 올해 전국 667개 초·중·고교를 '금융교육' 시범학교로 선정했다. 금융교육이 그만큼 중요해졌단 의미다. 금융과목을 학교에서 의무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앨런 그린스펀 美연방제도이사회 전 의장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했다.
판사는 재테크를 하면 안 되고 타워팰리스에 살아선 안 되고 펀드에 투자해선 안 된다는 지극히 ‘포퓰리즘’적 시각은 우리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물론이고 자신의 경제생활에도 절대 도움은 안 될 것이다.
만약 이 후보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거나 '특혜'가 있었다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가성'이 없단 핑계로 '스폰서'로부터 '용돈'을 받아 쓰거나 '뇌물'을 받는 판검사들에 비해선 그가 오히려 당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