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또다른 얼굴 '국민투표제 민주주의'

김태은 기자
2015.12.02 06:21

[the300][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12)정치발전을 넘어 국가발전으로-배경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5.11.1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엘리트 정치의 반대 개념인 대중 정치로 이해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보통 사람'이란 구호를 내세운 노태우정부는 포퓰리즘을 전면적으로 표방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에릭 홉스봄이 "민주주의와 보통사람의 시대에 속하는 것"이라고 포퓰리즘을 정의했듯 군사독재시대를 벗어나 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컸던 시대여서 가능했던 구호일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대중인기 영합주의라는 부정적 의미로 본격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말이다. 문민개혁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높았지만 개혁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박해지면서 개혁의 취지마저 대중의 인기에만 의존하려는 포퓰리즘으로 폄하된 것이다.

비단 문민정부 뿐 아니라 이후 역대 정부마다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대의 민주주의가 갖게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책임 정치가 실종된 채 정치가 선거에만 매몰되면서 더욱 강화되는 정치 형태로 지적된다.

겉으로 나타나는 형태는 정반대지만 선거에만 매몰되고 책임 정치가 실종됐다는 측면에서 '국민투표제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도 고민해볼 거리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언급한 개념으로, 투표에 의해 정치인을 한 번 뽑으면 그것으로 그만일 뿐 자신을 선출한 유권자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형해화된 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은 유권자의 여론에 지속적으로 반응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도록 유권자들에 의해 강제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의 가치 또한 여기에 있다.

최 명예교수는 “대표를 선거로 선출할 뿐 책임지지 않는다면 선거를 통해 왕보다 더한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사람을 선출할 수도 있다”며 특히 "한국 사회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다원주의적 시민 참여가 부족하고 시민사회가 허약해 사회세력들이 통치권력에 책임을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우선 약한 탓이다. 여기에 3권 분립이란 제도는 갖췄으나 실질적으로는 3권 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 입법부인 국회가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대통령과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이러다 보니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와 국민 여론의 간극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박근혜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나 국민통합 등에 대해 충분히 이행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팽배하지만 정부는 경제활성화만 강조하는 식이다.

더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나 노동개혁 입법 등에서는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무조건 강행되는 모습마저 나타나고 있다.

최 명예교수는 "집행자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을 해도 시민이 싫다고 하면 강제할 수 없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대중에 휘둘리는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하지만 대통령이 여론의 반대를 억누르기만 하려는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 행태 역시 우리 정치권의 실종된 책임정치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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