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12일, 해가 온종일 지평선에 걸려 있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이곳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전략무기 감축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정상회담 초반은 순조로웠다. 레이건은 전략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를 5년 내 절반으로 줄이고 10년 뒤엔 대륙간 탄도미사일 전부를 없애자고 했다. 고르바초프는 10년 내 아예 모든 전략무기를 폐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한가지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은 난항을 맞았다. 이른바 '스타워즈'로 불리는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의 실전배치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SDI는 핵탄두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는 방어체계를 말한다. 레이건은 이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당신이 평화의 기회를 걷어찼소."(레이건)
"아니오. 당신이 SDI의 실전배치만 포기하면 모든 게 끝납니다. 합의문에 서명합시다."(고르바초프)
"미안하오."(레이건)
두 사람이 협상장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지평선 아래로 저물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소련은 붕괴됐다. 소련 해체의 원인은 아프가니스탄 패전, 동구권 민주화 운동, 민족분쟁, 유가급락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의 패배였다. 그 중심에 SDI가 있었다.
소련은 미국의 SDI가 자신들의 핵탄두 미사일을 무력화시킬 것으로 보고 이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썼고, 끝내 재정난에 봉착했다. 재밌는 건 SDI도 소련의 핵탄두 미사일을 완전하게 막을 수 없고, 레이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모른 척하고 SDI가 완벽한 방어체계인 것처럼 소련을 속였다.
레이건이 펼친 '소련 붕괴 전략'의 핵심은 소련이 '쓸데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돈을 쏟아붓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공격력을 높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분야에 예산을 탕진토록 해 재정을 파탄시키는 게 목표였다. 예컨대 SDI의 방어망을 피하는 기술은 공격력과는 무관한데도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든다.
이런 구상은 포드 행정부 시절인 1976년 앤디 마셜 국방부 총괄평가국장이 작성한 보고서 '대 소련 군사부문 경쟁전략'에서 시작됐다. 보고서의 골자는 '적의 강점'이 아닌 '자신의 강점'을 기준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보다 더 많은 핵탄두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갖고 있었다. 이런 '적의 강점'에 소극적으로 대응만 해선 계속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대신 '자신의 강점'인 경제력과 기술을 활용해 적을 자멸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보고서의 메시지였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정치권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비대칭전력인 '핵'에 맞설 방법은 '핵' 뿐이라는 점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강점'에 끌려다니는 것일 뿐 근본적 해법은 될 수 없다.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동북아 핵무장 도미노' 위험 등도 감수해야 한다. 대신 '한미연합의 강점'에 기반해 북한이 핵 개발에 쓸 돈까지 '쓸데없는 기술'에 탕진하도록 유도하는 '대북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