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총 206 건
#1. 장발장 이야기로 유명한 소설 '레 미제라블' 후반부엔 무장봉기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 사건이 프랑스의 어떤 혁명을 모티프로 삼았는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선택한 건 1789년 대혁명도, 1830년 7월 혁명도, 1848년 2월 혁명도 아니다. 소설에 그려진 사건은 실패한 혁명으로 기록된 1832년 6월 봉기다. 프랑스의 대문호는 왜 성공한 혁명들을 놔두고, 단 이틀 만에 진압된 봉기를 작품에 썼을까. 프랑스는 1830년 혁명으로 전제군주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입헌군주 루이 필립을 세웠다. 그러나 루이 필립은 부자들에게만 선거권을 줬다. 기층민과 공화주의자들은 "혁명을 도둑맞았다"며 반발했다. 설상가상으로 1832년 봄 파리엔 콜레라가 창궐했다. 빈민가를 중심으로 2만명 가까이 숨졌다. 분노는 임계치를 넘었다. 그해 6월5일 왕정 타도를 위해 공화주의자들은 무장봉기에 나섰다. 민중파 정치인 라마르크의 장례식이 계기였다. 혁명군은 파리 중심가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레 미제라블에선 생앙투안 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 넷플릭스 화제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출처불명의 미사일을 알래스카 기지의 미군들이 발견하며 시작된다. 핵탄두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미사일의 궤적은 시카고를 향하고 있다. 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미국 행정부와 군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화는 112분 동안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같은 상황을 3가지 시선에서 차례로 비춰준다. 초반부는 미군 알래스카 기지와 백악관 상황실, 중반부는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전략사령부 사령관, 종반부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주된 축이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은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핵미사일이 떨어지기 전 러시아, 중국 또는 북한에 핵보복을 할지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영화를 찍은 캐서린 비글로우가 역사상 군사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여성 감독이란 데 이의를 달긴 어렵다. 2010년 비글로우 감독은 영화 '허트 로커'로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누르고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폭발물 처리 전문가의 뒤틀린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1. '포클랜드 법칙'(Falkland's Law)이란 게 있다. 반드시 당장 결정해야 할 일이 아니면 굳이 서둘러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어도 조바심 때문에 괜히 손 대서 악화시키는 것보단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는 얘기다. 포클랜드 법칙이란 이름은 포클랜드 제도에서 기인했다. 아르헨티나 동쪽에 위치한 포클랜드 제도는 19세기 초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에서 독립할 때 자국 영토로 선포한 곳이다. 그러나 1833년 영국이 이곳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오랜 갈등이 시작됐다. 1982년엔 이곳을 놓고 전쟁까지 벌어졌다.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이 포클랜드 제도를 전격 침공하면서다. 단 100여 명의 영국 해병대가 지키던 섬은 순식간에 아르헨티나군에 넘어갔다. 영국은 즉시 2척의 항공모함을 투입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영국은 74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다. 현재 영국은 포클랜드 제도에 약 13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며 실효지배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포클랜드에 대한 분
#1. "강자는 할 수 있는 걸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걸 당하는 법이다."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나 할 법한 말이다. 자유와 정의를 중시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지도자가 한 말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기원전 416년 고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밀리던 아테네는 약소국 멜로스를 희생양으로 택했다. 스파르타와 혈연 관계에 있지만 공식 동맹은 아닌 멜로스는 섬나라여서 해군이 약한 스파르타가 지켜주기 어려웠다. 멜로스에 상륙한 아테네의 지도자와 멜로스 측 대표의 대화를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자세히 기록했다. '멜로스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이 글에 따르면 아테네는 멜로스에 "죽고 싶지 않으면 항복하라"고 요구한다. 서두의 문장은 이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멜로스는 중립국으로 남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아테네는 거절한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멜로스는 잿더미가 됐다. 남자들은 몰살당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렸다.
#1. 2017년 11월7일, 서울중앙지검이 전병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의 측근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날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찾아온 날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핵심 참모 측을 압수수색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우린 정치 일정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 했다. 검찰 출입기자 시절 옆에서 지켜본 윤 전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혐오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보이려고 했다. 국회 얘길 하면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했다. 대학 동문 등 본인과 친분이 있는 일부 정치인 얘기가 나올 때만 반응을 보였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윤 전 대통령은 조국 사건 등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 수사를 이끌며 '보수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듯한 그의 태도는 오히려 지지자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실제로도 의회 정
#1. "2개의 잘못이 하나의 옳음을 만들 순 없다." 큰 키에 부드러운 스윙을 가져 '빅이지'(Big Easy)란 애칭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프로 골퍼 어니 엘스. 그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엘스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의 백악관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배려해 라마포사 대통령이 특별히 초대했다. 이날 정상회담 시작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 백인들의 피해 사례들을 거론하며 라마포사 대통령을 압박했다. 흑인들이 백인들을 상대로 '집단학살'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으며 백인 농장주들의 땅을 빼앗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남아공 내 심각한 흑백 갈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남아공의 악명높은 인종분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 넬슨 만델라의 집권과 함께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그러나 그 잔재와 그에 대한 흑
#1. 1919년 9월6일 상하이, 한성, 블라디보스토크 3곳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통합됐다. 초대 대통령으론 이승만이 추대됐다. 그가 미국에서 활동하며 쌓은 인맥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과의 프린스턴대 학연이 주효했다. 이승만은 1910년 프린스턴대에서 국제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프린스턴대 총장이 윌슨이었다. 이승만이 프린스턴대 출신에 정치학 교수였던 윌슨과 각별한 관계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1919년이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글로벌 패권국 자리에 오른 시점이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과 연이 닿는다니. 대한독립을 꿈꾸는 임시정부 입장에선 최적의 대통령 감이었을 터다. 100여년이 흐른 지금은 다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한다. 트럼프와의 통화 한 번으로 나라를 구할 수도, 망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관세폭탄과 미군
#1. 1428년 세종 10년, 진주에서 부친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생각은 달랐다.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효자, 충신 등의 모범 사례를 정리한 책이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을 적극 활용한 게 특징이다. 이 책은 1434년 전국에 배포됐다. 그러나 그림만으로 유교 이념과 생활 도덕을 완벽하게 설명할 순 없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기로 마음 먹은 계기 중 하나다. 실제로 훗날 성종 땐 한글로 쓰인 삼강행실도 언해본이 발간된다. 백성들의 덕성을 지키기 위해 교화에 힘쓴 건 비단 조선만은 아니다. 고려는 불교의 금강경을 대량으로 찍어 전국에 배포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승려나 식자층이 대신 읽고 설명해줬을 터다. 고려나 조선은 주권이 임금에게 있는 군주제였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덕성을 지키는 데 이토록 힘썼다. 그럼 주권이 국민에게
#1.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가 남긴 역작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대문호는 프랑스 대혁명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단두대로 대표되는 무자비한 학살극에 그는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디킨스가 대혁명의 당위를 부정한 건 아니다. 혁명 전 '앙시엥 레짐'(구체제) 당시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도 그는 연민의 시선을 던진다.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의 사료를 토대로 쓴 이 소설에서 디킨스가 개탄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닌 혁명 과정의 야만성이었다. 아무리 혁명의 명분이 순수해도 피에 굶주린 이들이 혁명의 깃발 아래 자행하는 야만적 보복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 #2.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다." 영국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말이다. 서양 철학의 어떤 줄기든 플라톤이란 뿌리에 빚지고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현대 정치
#1. 세계 최초의 세금은 '관세'였다. 요즘 가장 흔한 세금인 '소득세'는 가장 늦게 생긴 편에 속한다. 물건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때 내는 게 관세다. 수입업자의 부담이란 얘기다. 그러나 과거엔 물건을 실은 수레나 배에 부과됐다. 일종의 '통행세'였던 셈이다. 통행세를 꼭 돈으로 낼 필요는 없었다.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선 항구에 정박하는 모든 선박에서 책을 징발했다. 선박에 있는 책을 모조리 가져간 뒤 베껴 쓴 다음에 돌려줬다. 기원전 300년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명령으로 시작된 이 정책 덕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대 세계 최대 장서 보유량을 자랑할 수 있었다. #2. 만약 세금이 악(惡)이라면 관세는 '최악의 악' 가운데 하나다. 가장 부작용이 큰 세금 중 하나란 점에서다. 대표적 부작용이 세계 경제 대공황이다. 1929년부터 약 10년 간 이어진 대공황은 사실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불황기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관세를 대폭 인상하면
#1. 2011년 4월2일, 일본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고 있는 후쿠오카 돔. 무장한 북한 특수부대원 9명이 순식간에 경기장을 장악하고 약 3만명의 관중을 인질로 삼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일본 정부는 우왕좌왕한다. 그 틈을 타 484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특수침투용 수송기를 타고 추가로 후쿠오카에 도착한다. 스스로 '고려원정군'이라고 밝힌 북한 군인들은 인질을 무기 삼아 후쿠오카 전체를 점령한다. 북한은 이들을 '반란군'이라고 칭하며 선을 긋는다. 오랜 평화 속에 유약해진 일본 시민들은 북한 특수부대에 맞서 싸울 엄두도 못 낸다. 일본 정부는 후쿠오카를 봉쇄하고 규슈 전체의 교통을 차단한다. 그리곤 오사카 지방경찰의 특수부대를 동원해 진압 작전에 나서지만 대실패로 끝나고 만다. 후쿠오카 시민들은 무능한 중앙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오히려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북한 특수부대에 환호한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반도에서 나가라'의 초반 내용이다. 동북아시아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북한 특수부대의 전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 노동자도, 의사도 아닌 황제가 파업을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무려 30년 동안이나. 땅이 넓고 물건도 많은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대륙, 수 천 년 역사의 중국에서도 이 정도로 오래 파업을 한 황제는 단 한 명 뿐이다. 바로 명나라의 만력제, 묘호는 신종이다. 만력제는 47년의 재위기간(1563~1620년) 중 27년 이상을 놀고 먹었다. 어전회의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매일 전국에서 수천 건의 상소가 올라왔지만 만력제는 그 위에 엎어져 잤다고 한다. 이른바 '만력태정'이다. 신하들은 나무 하나 없는 자금성의 땡볕 아래 엎드려 황제에게 돌아오라고 읍소했다. 열사병에 쓰러지는 이가 속출하자 환관들이 물이라도 갖다주려 했으나 황제가 막았다. 나름대론 비장하고 결연한 의지의 농땡이였던 셈이다. 만력제가 파업을 선언하면서 든 핑계는 건강이었다.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던 게 만력제는 고도비만에 등과 다리가 굽어 혼자선 걷지도 못했다. 명나라 최악의 암군으로 불리는 만력제지만, 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