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辯)vs변(辨) 전쟁, 생존게임? 진실게임?
2015년 12월31일. '변호사도 대통령령으로 정한 실무수습을 이수한 경우에 한해 변리사 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육 이수 의무 부과' 어찌보면 간단한 법안처럼 보이지만 이 법안은 변호사와 변리사간의 10년 영역 다툼의 결과물이다.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부여 폐지'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대리 허용' 등 두가지 이슈에 대한 해법을 찾던 국회가 그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실무수습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있고, 특허침해소송 대리 문제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해 20대 국회에서도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24일 국회 등에 따르면 변호사와 변리사간의 직역 문제와 관련한 법안이 처음 국회에 발의된 것은 17대(2004~2008년)때다. 당시 최철국 민주통합당 의원은 '변호사가 변리사로 등록해야 변리사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변리사에게도 소송대리인이 될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을 내놨다. 18대(2008~2012년) 때는 이종혁 한나라당 의원이 '특허 침해 소송에서 변리사도 공동소송대리인이 되도록 하되, 대법원 규정에 따른 교육 이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두 법안은 소관 상임위는 통과했으나 법조인 출신들이 많고 법무부 의견을 중시하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려 임기 만료 폐기됐다.
19대(2012~2016년)에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변호사는 변리사 연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특허침해소송의 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냈고,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자격 부여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첫발 땐 '변리사 자격 자동부여 폐지'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 부여에 반대하는 쪽은 산업의 다양화, 정보기술 발달로 변리사의 전문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가운데 시험 과목 등이 크게 다른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특허침해소송과 관련한 국제 소송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법률 소비자들의 권익과 국익을 위해서라도 자동부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변호사가 의료, 노동 등 각 분야에 대해 모두 자격을 획득해 소송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편다. 더욱이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많은 수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각자 전문분야를 살려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전문성에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산업위 법안소위 논의에서 의원들은 대부분 변리사의 전문성 강화 필요성에 동의했다. 반면 오랫동안 소송과 관련한 전문성을 쌓은 변호사의 특수성도 감안은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1년여의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고, 대통령령으로 정한 실무수습 이수를 의무화해 변호사의 변리사로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첫삽도 못 뜬 '공동 소송대리권'= 다른 쟁점인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의 공동소송 대리 허용 문제는 19대에서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 현재 변리사들은 특허심판원에서 진행되는 특허유무효 결정과 특허권리범위 결정에 불복하는 심결취소소송에는 소송 대리를 할 수 있지만, 법원에서 진행되는 특허침해 여부와 이에따른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특허침해소송에는 대리권이 없다. 소송 대리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은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특허침해소송에서 변호사 혼자 제대로 된 변호를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리사와 소송과 관련한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가 함께 법정에 나갈 수 있다면 법률 서비스의 질이 더 높아진다는 논리다. 반대하는 쪽은 변리사는 기술의 분별을 업으로 하는 자격이지 소송대리 및 변론을 업으로 하는 자격이 아니다는 주장이다.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단련이 되지 않은 변리사들이 소송대리에 참여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재판을 제대로 받아야할 국민의 권리가 훼손된다고 지적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양측 의견이 강하게 충돌했다. 법무부가 반대 의견을 유지했고, 산업위 법안소위 의원들도 의견이 갈리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끝나지 않은 싸움 =변리자 자격 자동 부여 여부와 공동소송대리권에 대한 논의는 20대 국회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자격 자동 부여 문제는 변호사들에게 실무수습을 이수하게 하는 방향으로 절충점은 찾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을 놓고 실무수습의 실효성 논란이 벌어지는 등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공동소송 대리권도 변리사 업계의 숙원사업인데다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적지 않아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될 것이란 관측이다.
해묵은 불씨…변호사 vs 세무사 전쟁도 2라운드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부여제도를 둘러싼 논란보다 역사가 오래된 '직역 전쟁'은 바로 변호사와 세무사 간의 다툼이다. 변호사가 세무사 자격을 가진 게 1961년 세무사법이 제정됐을 때부터였던 만큼 변호사의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는 세무사 업계의 '반백년 숙원'으로 불린다.
변호사-세무사 간 오랜 '밥그릇 싸움'은 그간 세무사들의 '판정승'으로 이어지는 추세였지만 지난달 말 대법원에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에게 세무사 등록을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세무사 업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한국세무사회는 크게 유감을 표명하며 적극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또다른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은 지난달 28일 '법무법인에 소속된 변호사는 세무사 등록신청을 할수 없다'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상고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도 세무사로서 영업할 수 있다는 서울고법의 판결을 수용한 것이다.
현행 세무사법에 따르면 영리법인 임원이나 사용자는 세무사가 될 수 없다. 영리법인이 세무대리에 나설 경우 업무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국세청이 그동안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의 세무사 등록을 거부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세무대리 업무는 세무사로 등록해야만 가능하다. 현행 세무사법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 부여 하면서도 세무사시험에 합격하지 않았을 경우 세무사 등록은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단 2003년 실시된 사법시험과 그 이전에 합격한 변호사에 한해서는 세무사 등록을 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즉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2003년 이전 자격증을 딴 변호사들은 법무법인 소속이든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든 각종 세금 신고 업무 등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변호사들의 세무사 등록을 막아 변호사의 세무사 자동자격 부여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시켜왔던 세무사 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세무사가 독립적으로 세무대리업무에 전념하도록 한 전문자격사 제도의 본질적인 입법취지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세무사법의 재차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변호사 업계는 반대로 지난해 12월 법무법인이 외부세무조정업무에서 제외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이 매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세무조정계산서를 대신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이 2인 이상 세무사(변호사 포함), 회계법인, 세무법인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법무법인에 속하지 않은 2003년 이전 자격취득 개인 변호사만 관련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법무법인 입장에선 연간 1조원대로 추산되는 세무 관련 서비스 시장을 잃게 됐다.
일부 법무법인과 변호사 등은 해당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까지 청구하는 등 '강대강' 대치에 나서고 있다. 변호사 및 법무법인 등에 대해 세무조정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 직업선택 자유 등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외부세무조정 업무에 대한 규정은 제2의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한편 최근에는 변호사와 공인노무사, 변호사와 공인중개사 간의 '밥그릇 싸움'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변호사들이 노동사건도 적극 수임하기 시작하면서 공인노무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한 양상. 지난해 말에는 변호사들이 설립한 '트러스트부동산'이 파격적으로 낮은 복비를 제시하며 부동산중개업에 나섰다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고소당한 상태다. 현행법상 이들 직역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계속되는 갈등의 진폭제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누구를 위한 시행령?…변호사·변리사 '모두 불만'
#작년부터 변리사로 활동하는 이씨(32). 이씨는 변리사가되기까지 3년 넘게 학원수업을 듣고 실무수습교육까지 마쳤다. 이씨는 가끔 변리 업무를 하는 변호사들을 보면서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변리 업무만큼은 로스쿨에서보다 학원에서 배우는게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로스쿨 3학년생 김씨(28)는 꿈에 그리던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특허 관련 업무가 각광을 받으면서 변리사 쪽에도 관심이 생겼고 산업재산권법 관련 수업을 빠지지 않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으로 변리사 자격을 얻으려면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1년간 변리사 실무수습 수업까지 듣게됐다. 로스쿨 입학과 졸업, 변호사시험에 변리사 실습까지. 꿈을 위한 장벽이 너무 높게만 느껴진다.
일정한 실무수습을 이수한 변호사만 변리사 자격을 취득 할 수 있다는 '변리사법' 개정안의 시행령이 공개됐지만 변호사, 변리사 어느 쪽도 환영하지 않고 있다. 시행령은 변호사도 변리사 관련 400시간 가량의 수업을 받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전까지 이 교육은 변리사들만 들어왔다.
하지만 변리사 측은 시행령이 부실하다고 주장한다. 교육 면제 등 예외 규정이 너무 많다는 것. 시행령 개정안은 이공계 학사학위 이상을 취득하거나 대학원, 로스쿨, 사법연수원 등에서 산업재산권법을 수강한 사람에게 400시간의 교육 중 80~100시간의 면제 권리를 주고있다.
오규환 변리사회장은 "수업을 받았던 것을 기준으로 예외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현재 알고있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해야지 과거 수업을 받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할 수는 없다"며 "학부때 수업을 이수했는데 지금 관련 지식을 잊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 회장은 "로스쿨에서는 전반적으로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기 때문에 변리사 관련 업무를 수강했다고 해도 절대량은 적을 수밖에 없다"며 "2-3년 간 변리사 업무만 준비하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변호사 측은 400시간 수업이 변리사 사회에 대한 진입 장벽이라고 주장한다. 최진녕 전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학부랑 로스쿨 수업 이수로 충분히 관련 지식 습득이 가능하다"며 "지금 특허 관련 일을 하면서 변리사의 업무를 하는 변호사들도 무수히 많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관련 수업으로 지식이 있는 변호사들에게 수습 기간 중 예외조항을 두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결국엔 큰 틀에서 보면 불필요한 규제"라고 강조했다.
교육 주체도 논란거리다. 시행령은 실무수습교육 중 현장 연수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산업재산권 업무를 수행하는 법률사무소나 국가공공기관 등 단체가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변리사회 오 회장은 "변리사 교육 주체가 너무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재산권과 관련돼있기만 하면 변리사 업무가 아니어도 실무수습교육 업무로 인정될 수 있다"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다 요리사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최 대변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변호사협회나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에서 지적재산권 등과 관련한 실무강의가 있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변호사 단체도 교육 주체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