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국정을 집어삼키면서 대선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새누리당 주류 '친박'(친박근혜)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반대로 반 총장의 뒤에 가려졌던 여야 대권 잠룡들은 존재감을 부각시킬 기회를 얻었다.
30일 새누리당 지도부가 긴급 최고위원회를 개최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한 데에는 이번 최순실 사태가 정부와 집권여당의 힘만으로는 수습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불 보이듯 뻔하고 새누리당도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을 추월당했다.
새누리당의 타격은 여권 대선주자로 인식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27일 발표한(24~26일 전국 유권자 1528명 대상, 95%신뢰수준 표본오차 ±2.5%포인트, 응답률 10.4%) 조사결과에 따르면 반 총장의 지지율은 21.5%로 지난주 조사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19.7%를 기록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19.7%)보다 여전히 앞서며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2주째 하락하며 오차범위 내로 격차가 좁혀졌다. 문 전 대표는 지난주보다 0.8%포인트 올랐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3주만에 반등해 10% 지지율을 기록하며 3위를 지켰다.
반 총장이 국내정치와 거리를 두며 최순실 사태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친박'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친박'과의 관계가 부각될수록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이 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꽃가마'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권주자로 나설지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팽배하다. 여권 후보가 아닌 '제3지대'로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반 총장이 현재 상황에서는 거리두기를 하면서 상처를 덜 입고 있지만 내년 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후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로 말했다.
이미 정치권에는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기보다는 무소속으로 대권레이스를 펼치다 막판 '여권 단일화'를 노릴 것이라는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지층이 와해 수순을 밟는 모습을 연출하는 상황에서는 반 총장이 더 나아가 아예 '홀로서기'를 모색, 제3지대에서 중도보수세력과 손을 잡는 게 아니냐는 것. 반기문-문재인-안철수라는 3자구도가 여당후보 한 명을 더 포함한 4자구도로 분화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 총장의 여권이탈을 가정할 경우 여권 잠룡들에게는 이번 최순실 사태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비박'(비박근혜)계 일색인 여권 대선주자들은 박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와 거국내각 구성 등을 주장하며 대통령에게 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야당이 거세게 주장한 거국내각 구성을 여당도 수용하면서 당내 계파간 권력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내 경선에서도 비박계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현재 리얼미터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1튀부터 6위까지 새누리당 소속 대선주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한 때 여권 대선주자 1위로까지 꼽혔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군소후보'로써 하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지지율도 한자릿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거국내각 구성과 이후 불거질 '개헌정국'에서의 역할에 따라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야권에서는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과 날을 세우며 분위기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탈당,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며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평가다.
여기에 문 전 대표 외 당내 주자들까지도 힘을 받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3%로 4위에 올라있는 가운데 이재명 성남시장이 5.7%로 자신의 최고지지율을 경신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4.7%를 기록, 오 전 시장을 밀어내고 6위에 안착했다. 모두 박 대통령에 대해 각을 세우며 진보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내부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최순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선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야권으로서 악재다. 대선주자들의 경쟁으로 '흥행'한 당내경선 분위기를 대선까지 이어간다는 게 당초 시나리오였으나 그 시기가 길어질수록 '문재인 대세론'에 묻히게 될 것이란 우려다. 대세론이 확고해질 경우 안철수-손학규에 반기문까지 포함된 '제3지대론'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