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새벽 새해 예산안이 극적 타결되기에 앞서 고구마를 100개는 먹은 듯 답답했던 일주일간의 막바지 협상 과정이 있었다. 이해 관계를 저울질하는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예산안 처리는 법정시한을 넘겼다. 시한을 넘겨 합의안이 간신히 나왔지만 자유한국당의 '뒷북 반대'로 최종 수정예산안 처리 본회의는 '동물 국회'라 불릴 만한 장면들이 탄생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내년도 수정예산안 국회 통과까지 약 일주일 동안 협상 국면에서 결정적이었던 장면 7가지를 골랐다. 예산 협상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7가지 장면이다.
◇#1
한국당 "정세균 사퇴하라!"…의장석 앞 시위에 본회의 차수변경
지난 5일 밤 10시15분쯤 세입예산부수법안 중 하나인 법인세법 개정안이 처리된 직후 국회 본회의장,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장석 앞을 '점거'했다. 10명 남짓이었던 항의 인원이 계속 '증식'해 금세 수십명이 됐다. 장제원 등 일부 의원들이 한국당 참석을 기다리지 않고 개의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의장석 앞으로 가까이 붙어 호소(나경원)하거나 의장석을 두들기는 의원(김성태)들도 있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이다 회의를 강행하고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회의 강행에 화가 난 한국당 의원들은 민경욱 의원의 선창으로 "정세균 사퇴하라"고 외쳤다. 회의 진행이 더이상 어려울 정도였다. 손혜원·표창원·김영호 등 일부 여당 의원들은 그 장면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중계하기도 했다.
결국 회의가 30분간 중단됐다. 속개 시간은 오후 11시. 속개하자마자 수정예산안이 상정됐다. 김광림 정책위의장 등 한국당 의원들 7명이 반대 토론에 나섰다. 그 사이 날짜가 6일로 넘어갔다. 예산안이 법정처리시한으로부터 나흘이나 지나 통과되게 된 이유다. 한국당은 수정 예산안 표결에도 불참하더니 예산안 가결 선포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기도 했다.
◇#2
한국당 반발 자아낸 박홍근-권은희 카카오톡 메시지
지난 5일 본회의는 일단 오전 11시59분쯤 개의했다. 당초 개의 시간은 오전 11시로 공지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은 먼저 의석에 앉아있었다.
이때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의 휴대폰 화면이 일부 언론의 카메라에 찍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창이었다. 박 수석부대표가 오전 11시37분에 보낸 메시지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정책적 합의를 하기로 한 3가지 내용이 담겨있었다. △개헌안 마련과 선거제도 개편,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안 처리 등을 공동으로 추진할 것 △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임을 금지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 처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처리 등의 합의안이었다.
이중 선거제도 개편 문제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이해가 걸려 있는 부분이어서다. 이미 예산안 처리 본회의 여부가 불투명했던 한국당이 '밀실 야합'이라고 반발하며 확실히 돌아서게 된 계기가 됐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 메시지를 두고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에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추악한 뒷거래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3
예결위가 못다한 예산안 쟁점 협상, 원내대표 손으로
국회의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이틀 남긴 지난달 30일, 예산안 협상 주체가 갑작스레 원내대표 중심으로 격상됐다. 여야 3당의 예산 쟁점 협의체인 '2+2+2 회의'가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책위의장 조합에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조합으로 바뀌었다. 전권을 가진 원내대표들을 투입해 당 대 당 협상에 속도를 가하자는 취지였다.
이보다 하루 전인 같은 달 29일 2+2+2 회의 파행이 결정적이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두 야당측에 "전권을 가져오라"고 신경전을 벌이다 화를 내며 퇴장해서다. 야당은 야당대로 사과를 요구하다가 다음날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방(의원회관 737호)에서 열린 협상에 제대로 나타났다.
원내대표들이 투입되자 예결위 간사 모임인 소(小)소위원회에서 쟁점이 좁혀지지 않는 누리예산 쟁점까지 2+2+2 의제로 추가됐다. 점점 예결위 소소위보다 2+2+2에 힘이 실리게 됐다. 제대로 된 증·감액 심사보다 당 대 당 이해타산이 우선시된 예산 협상이 이어지게 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4
정 의장, 예산안 자동부의 시점 12시간 연기
2+2+2 회의에 원내대표들이 투입된 30일 오후,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부의 시점인 12월2일 새벽 0시까지 30여시간 남은 상태에 정 의장이 원내대표들을 소환했다. 정 의장은 이들과 면담 후 예산안의 본회의 부의 시점을 12시간 연기했다. 2일 정오가 자동부의시점으로 정해졌다.
자동부의 시점이 미뤄지면서 협상 시한은 12시간 늘어났지만 이미 법정처리 시한은 넘기겠다는 예상들이 나왔다. 3당 협상이 2일 정오까지 완료된다고 해도 본회의 처리 등을 위한 실무 작업에 보통 8~12시간 걸리는 만큼 법정처리시한인 2일 중 본회의 의결은 어렵다는 계산이었다.
◇#5
여야 3당, 줄다리기 협상 끝…시한 이틀 넘겨 합의안 발표
3당 협상은 예상대로 자동부의시점은 물론이고 법정처리시한도 이틀이나 넘겨 끝났다. 지난 4일 오후에야 여야가 법인세 인상안과 공무원 증원 규모, 일자리안정기금 규모, 아동수당·기초연금 인상 지급 시기 등 예산 쟁점에 대해 합의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만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공무원 증원 규모와 법인세 인상안에 '유보'의사를 밝힌 상태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반발도 예상됐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합의문 발표 후 취재진에게 "만약 의원총회에서 잠정 합의에 대해 제 의견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한국당)는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을 던지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이날의 의원총회부터 한국당의 반대 기조가 이어지며 5일 본회의장의 항의 시위 장면이 탄생했다.
◇#6
합의안 발표 후 잠적한 김도읍, 소소위 '당황'
3당 합의안 발표 이후 정 원내대표의 협상 내용에 실망해 잠적해 버린 한국당 의원도 있었다. 예결위 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이 주인공이다. 3당 합의안이 발표된 지난 4일 밤 8시 예결위는 소소위를 재개하고 보류 사업에 대한 막바지 심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합의안 발표 이후부터 잠적했다. 김 의원이 합의문을 받아보고 내치며 "소위는 왜 하고 소소위는 왜 한 거냐"고 화를 냈다고도 전해졌다. 김 의원이 보좌진과의 연락도 다 끊고 소소위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윤후덕 민주당 간사와 황주홍 국민의당 간사도 소소위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김 의원은 오후 10시에나 소소위가 열리는 국회 본청 337호로 돌아왔다.
◇#7
우원식과 김동철의 '밀당' 브로맨스…기자들도 '폭소'
예산안 처리 시한을 하루 남긴 지난 1일 오전, 각 당 원내대표실이 몰려 있는 국회 2층 복도에서 두 남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전날 2+2+2 회의에서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민주당과 국민의당 원내대표들 얘기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오전 회의를 마치고 나가며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맞은편에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나타났다. 우 원내대표의 구애가 시작됐다. 그는 김 원내대표를 붙들며 "잠깐만, 잠깐만 와보라"며 몇시에 보겠느냐고 물었다. 김 원내대표는 "아이, 나 바뻐! 보기 싫어"라며 피했다. 우 원내대표는 "나는 봐야 된다"며 다시 그를 붙잡았다. 두 원내대표의 '밀당' 장면에 당사자들은 물론, 취재진도 폭소했다.
우 원내대표의 구애 때문인지 두 사람은 지난 4일 따로 조찬을 하며 의견을 나눴다.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협상은 급격하게 진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