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했다. 기존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한층 더 강화한 것이어서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4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우리 국가의 주권적 권리와 안전이익, 발전권을 침해하려는 세력들의 책동은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뤄나갈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공인은 기존의 '통미봉남'을 넘어 한국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적대적 두 국가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라며 "남북관계를 가장 적대국으로 공인한 상황이어서 적대적 평화공존의 현실성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대해 "기존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2023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공식 선언했다. 남북 연결도로 및 철로를 끊고 군사분계선 인근에 철책과 방벽을 세우는 등 물리적 단절 조치까지 진행했다. 북한이 지난달 열린 9차 당 대회를 계기로 제도적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날 신문 보도상으로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헌법에 반영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신문은 이날 "회의는 넷째 의정으로 헌법 수정과 관련한 문제를 토의했다"며 조용원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이를 보고했다는 사실만 전했다. 대신 신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으로 개칭하고 수정·보충된 법안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해설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주의를 빼고 '공화국 헌법'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북한의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기존 사회주의헌법은 한국을 혁명의 대상이자 통일의 대상으로 봤다.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헌법'으로 개칭하고, 이를 통해 남한과의 이념적 연대나 민족적 특수성을 완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한을 더 이상 '함께 통일해야 할 동포'가 아닌,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려는 법적 토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유감을 표하면서도 기존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는 이날 "적대적 언사가 지속되는 것은 평화공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 "한반도에서 남북 모두의 안전과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은 '적대와 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라며 "정부는 긴 시야를 갖고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