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조폭)’라 부를 수 있는 폭력집단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부터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 등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양 뒷골목에는 '검계(劍契)'와 '왈짜'라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도박장이나 기생들을 관리하면서 이권을 두고 싸움질을 일삼았다.
검계의 경우 군사조직과 같은 규율을 갖췄고, 왈짜는 몸에 칼자국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기록에선 당시 포도청에서 검계를 단속하기 위해 '몸에 난 칼자국'을 단서 삼아 체포령을 내린 것으로 서술됐다.
일제 시대에는 조선의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명동과 종로 거리 등을 관리하는 폭력조직이 등장했다. 영화 드라마로도 유명한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시라소니' 이성순, '구마적' 고희경, '신마적' 엄동욱 등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협객'을 자처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좌우익의 이념대립 속에서 조폭들은 정치권과의 결합을 시도했다. 이승만 정권 이후 폭력조직들은 살 길을 찾기위해 속칭 '정치깡패'로의 변신을 꾀했다.
김두한과 이성순 등도 정계 인사들과 연계해 활동했고, 정치깡패의 대명사인 이정재와 그의 부하 유지광 등이 속한 '동대문 사단' 등은 정치테러를 자행했다. 특히 우익단체로 위장한 폭력조직들은 이승만 정권을 옹호하는 유인물을 뿌리며 관제 데모를 벌이기도 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깡패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정변 직후인 5월21일 서울 거리에는 이정재를 비롯한 깡패들이 자신의 본명과 별명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에 매달고 나타났다. 일행의 선두에는 '우리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앞세워졌다.
이정재가 범죄단체 수괴 혐의로 혁명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0월 형이 집행되면서 정치깡패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정재의 부하이자 '영화계의 황제'로 불린 임화수도 그 뒤를 따랐다.
정치깡패에 대한 대대적 단속으로 무주공산이 된 1970년대의 서울 뒷골목은 김태촌의 서방파와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 주먹들이 장악했다.
이들의 등장은 주먹싸움 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시미칼'로 불리는 회칼을 무기로 한 조폭들 시대로의 전환이었다. 이들 3대 조직은 회칼을 이용해 잔인한 방법으로 보복과 폭행을 감행해 세력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이와 함께 마약, 인신매매, 도박 및 고리대금, 청부살인 등의 범죄도 늘어갔다.
1975년 양은이파가 기존 깡패 조직 출신인 신상사파를 습격한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은 이들 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조폭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태촌도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습격사건'으로 구속돼 폭력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징역 5년과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집권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조폭 척결을 지시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거대조직이 와해된 이후 최근에는 폭력조직들이 합법화된 법인 활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건축 시행사나 아파트·상가 분양 시장에 진출하면서 활개를 쳤고 금융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까지 넘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해외 조폭들도 급증했다. 특히 조선족 밀집지역에 중국 폭력조직인 흑사회 분파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국내 조직과 연계해 강남권까지 세력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