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그가 '문민정부'를 이끌며 추진한 각종 개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 이틀이 지나 "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이라며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 17억7822만원을 전격 공개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며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고 이는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강제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이 법은 공직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속·직계비속의 재산 등록사항과 변동사항을 관보나 공보에 게재해 공개하도록 규정한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막기 위해서다. 법조계는 이 법이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행위를 근절하는데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이 법이 개정된 이후 재산공개에 발목 잡혀 주요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와 더불어 경제분야 개혁정책으로 꼽히는 것이 부동산 실명제다. 김 전 대통령은 '부동산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통해 부동산 거래를 매매 당사자의 명의로만 할 수 있게 의무화했다.
이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실소유자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등기를 올리고, 자신은 과세를 피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부동산 소유자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부동산 투기와 조세를 회피했으며 돈세탁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 법의 시행으로 부동산은 실소유자의 이름을 올리지 않을 경우 불법으로 간주돼 처벌받는다. 이 제도는 부동산 거래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처벌이 약해 부동산 실명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차명으로 부동산 등기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조차 부동산 차명거래는 단골로 등장하는 상황이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군부정권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확고히 세우기 위한 일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취임 첫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담화'를 통해 5·18광주민중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13년여 만에 '폭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또 '4·19 의거'를 '4·19 혁명'으로 격상하고 '12·12'를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지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법정에 세웠다. 이를 통해 5·18 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 추진도 법제화 했고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진압을 공로로 진압군이 받은 상훈을 박탈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