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홍보영양사' 피눈물…"대기업만 혜택"

김평화 기자
2016.09.21 04:50

서울교육청 "대면 접촉 원칙적 금지", 1000여명 실직 위기…한달째 '무급휴가'도 속출

중견 중소 식품업체에서 일하는 홍보 영양사들이 자칫 일자리를 잃을 위기다. 28일 전면시행을 앞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들도 된서리를 맞을 전망이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일선 학교들에 식품업체(공산품 등 식재료 취급) 소속 홍보 영양사와 학교 소속 영양사 간 대면접촉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행정지침을 전달했다.

경기도교육청 등 다른 지역 교육청들도 홍보 영양사 대면접촉 금지 방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 영양사는 식품회사 소속으로 제품을 홍보·판촉하는 직원을 말한다. 풀무원, 오뚜기 등 대기업은 물론 각 지방에서 'OO식품' 식으로 간판을 걸고 공장 한두 곳을 운영하는 영세업체들도 홍보영양사를 두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홍보 영양사가 학교 영양사에게 샘플로 제공하는 식재료를 문제 삼았다. 이 샘플에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영란법에 따라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은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들로부터 3만원이 넘는 식사를 대접받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처벌받는다. 선물의 상한액은 5만원이다. 1회 100만원, 연간 합계 3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 처벌을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김영란법이라는 확실한 처벌규정이 생기면서 접촉 금지라는 공식적인 행정지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 1000명(업계 추산)에 달하는 홍보 영양사들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식재료를 납품하기 위해 샘플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제품을 홍보할 만한 수단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홍보 통로가 아예 차단됐다고 여긴다.

한 영세업체 소속 홍보 영양사는 "교육청이 홍보활동을 사실상 금지해 홍보 영양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 위기"라며 "새 직장이라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영양사는 "기본급이 낮고 인센티브로 임금을 받는 구조라 대면접촉이 금지되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중견 중소기업에 타격을 주고 대기업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견 중소기업의 홍보 통로가 막히면 '이름 값'이 높은 대기업을 선택하기 쉬운 탓이다. 대형 업체 제품이 상대적으로 신뢰도와 안전성이 높다고 일반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안정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서울시 일선 학교 소속 한 영양사는 "규모가 큰 식품업체 식재료는 카탈로그만 보고 골라도 제품의 질이 보장되지만 군소업체 제품은 직접 사용해보지 않으면 구매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대면 접촉이 금지되면 아무래도 큰 기업 제품 위주로 구매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군소 업체들은 샘플로 '검증'을 받아가며 판로를 개척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 영업망을 확보한 제품 외에는 신제품 등을 홍보할 길이 막혔다.

적지않은 업체들이 존폐 위기까지 걱정하고 있다.

일감이 없어져 한 달째 무급휴가 중인 또 다른 영세업체 홍보 영양사는 "교육청이 학교 영양사들에게 공문(대면접촉 금지)을 보낸 이후로는 학교를 방문조차 못한다"며 "회사도 매출이 뚝 떨어졌는데 별다른 대책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학교에 식재료를 납품하던 중소 식품업체 관계자는 "판로가 막혀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직원들 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일단 무급휴가를 쓰게 했지만 회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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