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양명(立身揚名). 예로부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출세해 이름을 세상에 드날리는 것을 일컫던 말이다. 사농공상으로 직업의 높낮이가 갈렸던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판검사라는 직업은 자수성가의 표본이다.
이런 직업군에서 이름을 드날릴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직업인이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승진이다. 판사든 검사든 크게 다를 리 없다.
고위 공무원에 해당하는 검사들이 승진하기 위해선 단순히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정 직급 대상자부터는 인사 검증이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올해 3월부터는 차장검사 보임 대상자까지 법무부의 검증을 받았다.
내년 1월 실시 예정인 간부 인사에서는 부장검사 보임 대상자에 대해서도 인사와 재산 검증이 실시된다. 대검찰청이 자체적으로 내놓은 개혁안이 처음 실시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인사 검증에 동의하지 않고 차라리 승진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승진 거부 검사'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입신양명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법무부가 지난 20일까지 인사 대상자들에게 인사 검증 동의와 관련 자료를 요구했는데 일부 검사는 일찌감치 승진 대상에서 스스로를 제외하고 인사 검증 동의서 제출을 접었다고 한다. 또 일부는 제출 시한 마감일까지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하는 검사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승진이 승진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 또 인사가 가져올 혼란에 휘말리는 것을 걱정해서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곧 있을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이 끝나면 법무부와 검찰, 청와대와 검찰의 힘겨루기가 더 심해질 것에 대한 우려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영향으로 검찰 조직 자체가 바람 앞 촛불 같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승진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불안한 연말을 맞고 있는 검찰 조직의 내부에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