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뉴스1) 한유주 기자,강수련 기자 = "비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계속 와서 올해 농사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죠. 일주일은 비가 더 온다는데 나무들이 숨을 못 쉬니까 다 죽어날 거예요."
6일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에서 7000평 규모의 과수원을 운영하는 명인복(58)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날 밤 내린 비로 명씨의 사과나무밭이 있는 임진강 통일대교 부근에서 공사 중이던 둑이 무너져내렸다. 둑이 무너지자 수위가 상승한 인근 통일천의 물이 밭으로 들어찼다. 1000평 규모의 밭이 온통 물에 잠겨 저수지처럼 변했다.
지난 1일부터 누적되기 시작한 파주 지역 강수량은 6일 오후까지 301.5㎜(파주 광탄면)를 넘었다. 5일부터 이날까지 하루 동안 108.5㎜의 비가 내렸다.
명씨에 따르면 매 여름 집중호우가 내릴 때마다 밭이 물에 잠긴 적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비가 며칠 반짝 내리고 말아 금방 물이 빠졌다.
그러나 올해는 비가 쉬지 않고 내리면서 나무뿌리가 며칠째 물에 잠겼다. 진흙처럼 질퍽해진 땅속에서 나무들은 숨을 못 쉬고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현재 군내면에만 60㏊(헥타르)의 농경지가 침수됐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군내면과 마주 보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도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가 온통 흙탕물에 잠겨 저수지처럼 변해있었다.
마을 초입 도로에는 이날 오전 6시쯤 물에 잠겨버린 시내버스 한 대가 머리만 겨우 내밀고 서 있었다. 경사로 쪽은 물살이 형성돼 빠르게 흘렀다.
임진강과 율곡리 마을을 양쪽으로 두고 강을 따라 이어진 37번 국도에는 행인들이 차를 멈추고 서서 물바다가 돼 버린 마을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김원기 파평면사무소 복지팀장은 "저지대에 마을이 있어서 배수문을 열고 싶어도 임진강 수위가 높아 역류할까 봐 못 연다"며 "배수문을 닫아 놓아 빗물이 도로부터 찬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율곡리는 전날(5일) 오후 3시부터 침수가 우려돼 대피명령이 떨어졌다.
율곡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의 가게 역시 입구 앞까지 강물이 들어찼다. A씨는 대피명령이 떨어진 직후인 전날 오후 4시무렵 간단한 옷가지만 싸 들고 근처 마을에 대피해있다.
A씨는 "일단 필요한 대로 인근 마을에 차를 주차해놓고 대피해있는 상황"이라며 "마을로 들어가는 찻길이 막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지금 가게 안 상황이 어떤지는 나도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율곡리 인근 파평중학교에는 이날 오후 20여명의 주민들이 대피해있다. 다행히 도로나 농경지 외에 주거지가 침수되는 피해는 없었지만 마을이 아예 고립되는 상황을 피해 몸을 먼저 피한 것이다.
이날 점심까지도 긴장감이 감돌았던 파평중학교 대피소에는 오후 2시45분쯤 임진강 수위 하강으로 인근 연천군에 발령된 주민대피령이 해제됐다는 안내문자가 전해지면서 안도감이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율곡리에 거주하는 김모씨(46)는 임진강 수위가 낮아졌다는 소식에 반색했다. 이날 새벽 급히 집을 빠져나오느라 반려견을 혼자 두고 온 김씨는 "집 안까지는 물이 안 들어왔지만 강아지가 혼자 고립된 상황이라 걱정"이라며 "도로를 덮은 물이 종아리 정도까지만 내려와도 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쏟아지는 장맛비와 북한지역의 방류로 전날 주의단계인 12m를 뛰어넘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임진강 필승교 수위는 이날 오전부터 비가 멈추면서 오전 11시40분 기준 10.10m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는 멈췄지만 아직 진입로 복구까지는 갈 길이 막막하다. 도로의 물을 빼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문을 열면 강물이 마을로 다시 역류해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7일부터 다시 비가 올 것으로 예보돼 있어 북한이 강물을 추가 방류할 가능성도 있다. 율곡리 주민들은 도로의 물이 자연스레 빠져 진입로가 모습을 보일 때까지 대피소에 머물 계획이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