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밤 10시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 앞. SNS·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맛집으로 유명세를 탄 장소지만 이날 음식점 앞에는 담배꽁초와 전단지, 먹다 버린 음료 캔 등 쓰레기가 가득했다. 한켠에는 추레한 행색의 노숙인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이튿날 문을 연 업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30ℓ 크기의 업소용 쓰레기봉투는 이내 절반 이상이 가득 찼다.
코로나19(COVID-19)로 밤 9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가 내려지면서 유동인구가 줄어든 번화가 상인들이 '쓰레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게 내 상주 인력이 줄어 관리가 어려워진데다 인근 노숙인들까지 몰리면서 번화가가 사실상의 '유령거리'가 된 탓이다. 상인들은 '자경단'이라도 꾸려 대응하지 않으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쓰레기 처리비용이 더 나올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0일부터 31일까지 밤 9시 이후 서울 중구 명동·광진구 건대입구역·서대문구 신촌역 일대의 번화가에 위치한 상점 20여곳을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상점 업주들이 저녁 시간 쓰레기 피해를 호소했다. 쓰레기를 방치했다가는 바퀴벌레나 쥐가 출몰하면서 자칫 영업 중단으로까지 번질 수 있어 업주들은 걱정이 크다. 코로나19 이전보다 늘어난 쓰레기 처리비용은 덤이다.
특히 휴업 중인 가게의 경우 쓰레기가 방치돼도 관리 인력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의 양이 더 많다. 신촌역 인근에서 감자탕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적자가 너무 심해 지난주에 3일 정도 가게를 닫았다 와 보니 가게 앞이 쓰레기로 난장판이 됐다"며 "심지어는 취객들이 문에 대고 노상방뇨를 한 자국도 있어 수십만원을 주고 청소업체를 불렀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영업 중인 가게도 쓰레기 피해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건대입구역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씨(43)는 "어차피 손님이 없어 밤 8시 30분 정도 되면 문을 닫는데 인근 대학생들이 술을 마신 뒤 카페 앞 테라스로 모여든다"며 "테라스 안까지 환경미화원 분들이 치워주시지는 않기 때문에 아침이 되면 밤 사이 뭘 먹었는지도 알 수 있을 지경"이라고 했다.
인근에 을지로입구역·서울역·탑골공원 등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있는 명동의 경우 피해가 심하다. 노숙인들이 머무르면서 남기는 쓰레기와 악취로 손님과 갈등을 빚는 업소도 있다. 코로나19로 무료급식·노숙인 자활프로그램 등이 대부분 중단되면서 일부 노숙인들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어 놔 영업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환경미화원과 재활용품을 주워 모으는 어르신들까지 총출동해 쓰레기를 주워 보지만 빈 가게가 많고 쓰레기의 양이 늘어나면서 역부족이다. 명동에서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던 박모씨(67)는 "최근 훼손됐거나 토한 찌꺼기, 심지어는 대소변이 묻어 있는 종이상자(폐지)가 늘면서 처리가 난감하다"며 "내 가게도 아닌데 노숙인들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어 힘들다"고 했다.
번화가에 문을 닫은 업소들이 늘면서 당분간 이같은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일 서울시 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시 전체의 폐업수는 5886곳으로 전년 동기(5022곳) 대비 864곳 늘었다. 특히 종로구·중구·서대문구·광진구 등 번화가가 위치한 지역의 폐업률이 모두 증가했다.
업주들은 지자체·경찰이 순찰을 강화하는 한편 쓰레기 무단투기 처벌 규정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쓰레기를 무단투기할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버리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더라도 투기가 실제 단속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체감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 대표는 "연합회 회원들 중에도 가게 앞 쓰레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밤 9시 이후 편의점에서도 취식이 금지되다 보니 문을 닫은 카페나 식당의 야외 테라스를 찾아 음주·노상방뇨 등을 일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경찰이나 구청에 신고하는 것도 쉽지 않아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아침이 두려울 때가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