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가게에 몰래 그린 '그라피티'…"예술이라고? 범죄입니다"

박수현 기자
2022.09.02 05:00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 뚝섬역 역사 기둥에 그려진 그라피티. /사진=박수현 기자

건물 외벽이나 상가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가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허가받지 않은 그라피티는 인적이 드문 야간을 틈타 타인의 재물을 훼손하는 엄연한 범법행위지만,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작품'이 온라인에 공유되기도 한다. 피해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고 단속이 어려워 재발도 잦다. 법조계는 그라피티 행위로 형사·민사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10대 A군을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군은 지난달 초부터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놀이터, 대형 조형물, 내부 복도, 공중화장실 등에 유성 매직펜 또는 래커 스프레이로 그라피티를 그린 혐의를 받는다.

당초 낙서가 발견되자 주민들은 범죄의 표식이나 이단 종교단체의 소행이 아닌지 걱정하며 불안에 떨었다. 이에 해당 아파트 관리소는 경찰에 '낙서 행위자를 찾아달라'는 취지의 신고장을 제출했다. A군은 지난달 29일 부모와 함께 경찰에 자진 출석했으며 호기심에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라피티는예술로 선망받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그라피티 관련 게시글이 올라온다. 그라피티 활동가들은 자신이 그린 작품을 공유하고 노하우를 전수한다. 서울 곳곳에 위치한 가게의 철제 셔터나 지하철 역사의 외벽, 주택가 담벼락 등이 주 무대다. 간단히 사인부터 채색까지 꼼꼼히 마친 벽화도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건물 외벽에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사진=박수현 기자

영문도 모른 채 가게가 그라피티의 무대가 된 소상공인들은 뒷처리로 경제적 부담을 호소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45)는 "가게 셔터에 그라피티가 그려진 게 세 번째"라고 했다. B씨는 "지우는 데에 돈과 시간이 모두 소비되는데, 지워 놓아도 그리는 일이 반복된다"며 "파출소에 가도 못 잡는다고 하고 잡아봤자 애들이라 처벌도 힘들다고 하고 점주 입장에선 관리가 되지 않으니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영등포구에서 부동산을 하는 C씨(53)도 "두세달 전부터 가게 셔터에 낙서하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 피해가 컸다"며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나이 드신 분들이 아주 싫어하고 손님들도 안 온다. 그런데 셔터가 비싸서 함부로 교체하지도 못하고 범인을 잡자고 진을 치고 있기도 그렇다. 가게를 생각하면 경찰에 신고해서 벌금을 먹여야 한다"고 토로했다.

허가받지 않은 그라피티는 범법 행위다. 대표적인 사례가 G20 정상회의 열흘 전에 그려진 '쥐 그라피티'다. 대법원은 2011년 10월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대학 강사 D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D씨는 2010년 10월31일 서울 을지로 일대의 G20 회의 홍보 포스터 22장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혐의를 받았다.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민사적 책임도 뒤따른다.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9월 서울시가 그라피티 작가 E씨를 상대로 낸 3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E씨가 서울시에 15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E씨가 2018년 6월6일 밤 11시30분쯤 서울 청계천의 베를린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려 원형을 훼손한 데에 따른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그라피티 작업에는 법적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범한 변호사(법무법인 YK)는 "그라피티가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면 재물손괴죄나 공용물건손상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그라피티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외부로 보여지는 부분에 그림이 그려져서 별도의 비용을 들여서 지워야 한다면 효용을 해쳤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형사 처벌이 벌금형에 그치더라도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이 남는다. 김기윤 변호사는 "손해배상청구 금액은 손괴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며 "그라피티 대상이 철제라면 페인트를 지우는 비용만 부담할 수도 있겠지만 대상이 나무, 예술품 등 복원할 수 없는 것이라면 교체 비용을 물거나 예술품 감정가를 배상해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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