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안전모 대신 털모자 쓴 작업자들…바람만 불어도 '추락 위험'

고양·수원·시흥·안산·평택=박수현 기자, 김도엽 기자, 원동민 기자, 박상곤 기자, 김지은 기자
2023.01.03 06:00

[연중 기획] 안전은 현장경영이다
산업현장 르포①
현장 여전히 위험한데…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은 전체의 1%뿐

지난해 12월1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의 한 빌라 공사현장에서 작업자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다. /사진=박수현 기자

"안전 난간이 없다면 바람만 불어도 추락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요."

지난해 12월 14일 낮 경기도의 한 빌라 공사현장. 체감기온은 14도까지 떨어졌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공사 중지는 없었다. 현장 내부엔 녹슨 못이 박힌 나무판, 동그랗게 꼬인 철사 뭉치, 사용하던 연장이 빼곡했다. 막 꼭대기층 콘크리트 타설을 마친 건물 계단에는 제대로 된 난간도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들어올 자리에는 추락 방지를 위해 어설픈 합판이 대어져 있었다.

작업자들은 안전모 대신 털모자를 썼다. 곳곳에 삐죽이 나온 철제물에 머리를 찧을 것 같아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했다.

현장에 나간 노동안전지킴이들은 가장 먼저 안전모 착용을 점검했다. 지킴이들의 뒤를 따르던 현장소장은 "안전모를 쓰라고 말해도 일할 때 불편하다며 벗는 작업자가 많다"면서도 "그나마 과거에는 안전모를 쓰라고 말하면 '귀찮게 하면 일 안 한다'며 집에 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안전의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취재진은 지난해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경기 고양·수원·시흥·안산·평택 5곳에서 노동안전지킴이와 함께 건설현장 6곳과 제조업체 5곳의 현장 점검을 동행취재했다. 경기도가 2020년 4월부터 도입한 '노동안전지킴이'는 50인 미만 소규모 산업현장을 중심으로 산업안전보건기준 위반사항 등을 점검하고 개선 및 보완 방향을 지도하는 업무를 맡는다.

노동안전지킴이는 도입 첫해인 2020년 10명이었다가 2021년부터 104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단속 권한이 없지만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사업장 현황을 파악하고 직접 현장에 나가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이 때 위험 요소가 발견되면 곧바로 시정을 요구하고 개선 사항을 받아본다. 2차, 3차 점검에도 위험 요소가 개선되지 않으면 노동지청에 감독을 요청한다.

취재진이 찾은 건설현장 6곳 가운데 3곳에는 추락 위험 요소가 있었다. 현장의 간이 발판에 난간대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건물 계단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비계에 설치한 난간을 작업 편의를 위해서 잠시 빼두고 원상 복구하지 않은 현장도 있었다.

빌라 공사현장을 살펴보던 노동안전지킴이는 "사고는 사소한 곳에서 발생한다"며 "고층에서 발판 위를 걸어갈 때 난간대만 없다면 바람만 불어도 추락 사고가 일어나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 난간, 발판, 난간대를 설치하는 일은 2~3분이면 충분하지만, 추락 사고가 일어나면 사망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추락사는 산업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유형이다. 지난해 근로자 사망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유죄 판결(1심)을 받은 사례 121건 중 67건이 추락사였다. 이날 현장에 나간 노동안전지킴이들은 작업관리자와 함께 위험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시정을 요구했다.

산업재해 일어나면 처벌받지만…점검은 가뭄에 콩나듯
지난해 12월1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의 한 빌라 공사현장에서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가 현장 곳곳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사업주가 추락 위험이 있는 현장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2021년 4월에는 경남 양산시에서 7900만원 규모의 단독주택 신축공사를 하던 현장소장이 사망사고예방 특별기획점검에서 안전난간, 중간 난간대, 작업발판을 미설치한 것이 적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현장에서 작업자가 사망하면 처벌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4월에는 광주 서구에서는 4층 상가건물 외벽도장공사를 하던 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현장에는 안전난간, 작업발판, 추락 방호망이 없었고 작업자는 안전대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고로 사업주는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건설현장뿐 아니라 제조업 사업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9년 9월에는 경기 양산에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근로자가 자동유압 사출성형기를 점검하다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업체 측은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업체의 대표이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산업현장은 여전히 위험하지만 전체 사업장 대비 점검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산업안전감독이 시행되는 곳은 전체 사업장의 1%(2019년 기준 2만 1779개)수준이다. 안전보건공단에서 직?간접적으로 기술지원하는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약 18%(약 36만개), 민간 기관의 산재예방 지원이 이뤄지는 곳은 전체 사업장의 약 9.5%(약 19만개) 수준이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2020년을 기준으로 전국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이 약 200만개에 이른다"며 "중복되는 사업장이 없다는 가정 하에 전체 사업장의 30%가량만 안전 점검이나 지도·관리가 이뤄지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노동안전지킴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전체 사업장을 감독하려면 사업규모가 3배는 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각지대 사업장' 점검하는 노동안전지킴이...권한 부족에 쫓겨나고, 개선 요구 거절도
지난해 12월14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와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건설현장의 크레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박수현 기자

각 지자체에 소속된 노동안전지킴이들은 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방문해 위험 요소를 지적하고 교육을 통해 작업 환경 개선을 유도한다. 노동안전지킴이가 점검하는 사업장은 △건설업 △제조·물류 시설 △수행사업으로 나뉜다. 중점 점검 대상은 공사 규모 120억원 미만의 소규모 건설 현장, 물류 시설 운영업(용인·이천·광주), 외국인고용 소규모 제조업(양주·김포)과 지자체에서 직접 수행하는 모든 사업이다.

취재진이 동행한 점검 현장에서도 즉각적인 변화가 있었다. 경기 시흥의 한 건설 현장에서는 크레인에 붙은 유효기간이 지난 증명서가 교체되고, 핸드 그라인더에 보호덮개가 씌워지고, 사다리에 지지대가 설치됐다. 한 분쇄기 제조업체에선 직원들이 모여앉아 추락, 충돌, 끼임, 화재폭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동안전지킴이의 '안전 컨설팅'을 듣기도 했다.

노동안전지킴이의 지적 사항을 바로 시정할 수 없다면 시간을 두고 조치하기도 한다. 지난해 경기 수원시에 있는 소형 트랜스 제조업체는 첫 점검 당시 프레스 기계에 끼임 방지와 방호장치를 갖추지 않고, 불량 소화기를 부착하는 등 안전조치가 미흡했다. 그러나 현장 점검 이후 프레스 기계에 끼임 주의 표지를 부착하고, 소화기와 소화기 위치표지를 부착하고 창고를 정리해 작업 중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경기 안산의 노동안전지킴이 관계자는 "올해 갔던 제조업체 가운데 자재들이 어지러이 널려있고 천막이 누수되는 데다 전기분전함 충전부스바가 노출돼 큰 사업장이 있었다"며 "노동안전지킴이들이 업체 부장, 이사, 대표를 직접 만나 하나하나 설득하고 쫓아다니며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들여 현장을 변화시켰다"고 했다.

소규모 산업현장이 현장 점검과 지도를 통해 변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점검조차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다. 노동안전지킴이 A씨는 "소규모 건설 현장에는 현장소장, 안전관리자가 없고 작업반장만 있는 곳도 있다"며 "바람에 날아갔다면서 공사안내표지판을 세워두지 않고 현장 인원에게 관리자의 행방을 물어도 '모른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바닥에 흩날리는 찌라시를 주워서 연락처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장에 진입해 안전 설비 개선을 요구해도 업체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안전지킴이 B씨는 "건설업은 안전 조치를 할 때 기존 자재를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제조업이나 공장은 설비 개선이 곧바로 추가 비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선 요구를 해도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지금까지 5~10년 이대로 했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며 반발하기도 한다"고 했다.

노동안전지킴이에게 단속 권한이 없다 보니 업체가 점검을 거부하면 강제로 진입할 방법이 없다. 점검에 응할 이유가 없다며 내쫓거나 막말을 하고, 개를 풀어두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안전지킴이 C씨는 "한 업체가 거절하면 인근 업체에도 '거절해도 된다'고 소문이 난다"며 "점검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갑자기 사업주가 뛰어나와 '다른 업체에 물어봤는데 안 해도 된다고 했으니 서명한 서류를 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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