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 넘기면 연봉 2배" 달콤한 속삭임…표적은 경쟁 밀린 '2인자'

이강준 기자, 양윤우 기자, 이현수 기자
2025.11.04 08:30

[MT리포트]인도도 한국 배터리 노린다(下)

[편집자주] 한국 최첨단 배터리 기술이 새고 있다. 중국에 이어 인도도 노리고 있다. 이번엔 한국 투자를 받은 기업이 배신했다. 좀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유혹은 크고 처벌은 악하다보니 국가기술 유출은 끊이질 않고 있다. 유출의 통로는 해외법인이다. 기술을 지키는 효과적인 방안을 알아봤다.

"연봉 2배" 경쟁 밀린 '2등' 꼬드기는 중국 회사…'핵심기술' 이렇게 샌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출범 이후 해외 기술유출 현황.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국가핵심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 직원들은 매일 기술유출의 유혹과 싸운다. 고액 연봉으로 유혹해 경쟁업체로 이직을 꼬드기는 헤드헌터뿐만 아니다. 기업 내부 경쟁에서 밀려 '먹고 살기 위해'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엔지니어도 있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비밀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해 실형을 피해간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해외 기술 유출 사범 검거 건수는 2022년 12건에서 지난해 2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 1건에 불과했던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은 지난해 11건으로 폭증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첨단 기술이 표적이 됐다.

◆ 기술유출 사냥꾼, '2인자 엔지니어' 노린다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를 찾은 참관객들이 알루미늄 배터리 호일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연관없음. /사진=뉴시스.

고액 연봉, 약한 처벌이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는 주된 이유로 꼽히면서 산업기술유출 수사 전문가와 보안업계는 '내부 경쟁에서 밀린' 직원들이 기술유출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고 분석한다. 피해기업이 보안 정책을 강화하고 관련 교육을 진행해도 유출 시도가 꾸준히 이뤄진다는 취지다.

기술유출 헤드헌터들도 국내 기업 엔지니어의 '2·3인자'를 노린다.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업황 악화로 일부 핵심 직원만 주요 보직에 앉히려는 회사 정책에 뒤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헤드헌팅에 표적이 된다고 한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재원이 한정적인만큼 일부 엔지니어에게 높은 연봉과 혜택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올해 1월 이차전지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법원에 넘겨진 국내 주요 대기업 배터리 회사 전·현직 임직원들도 내부 경쟁에서 밀린 엔지니어들이었다. 국내 기업에서 미래 계획을 꾸리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중국 경쟁사는 현재 연봉의 최소 2배 이상을 지급하겠다고 접근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부의 2인자 등 경쟁에서 밀린 직원들을 잘 챙겨야 하는 이유"라며 "이들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지만 국내 산업을 위해 이바지한 공로가 있는만큼 회사 차원의 인정과 적절한 감시 등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 '영업비밀' 아니라며 솜방망이 처벌…공허한 '양형 강화'

21일 경기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여파로 대미 수출액은 두 자릿수 넘게 감소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까지 수출액은 339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2%(18억7천만 달러) 감소했다. 이달 20일 간 수출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반도체가 10.7%로 크게 증가한 반면 전통적 수출효자 종목인 승용차(6.5%), 석유제품(22.0%), 자동차 부품(1.7%) 등은 감소했다. 사진은 기사와 연관없음/사진=뉴시스

유혹에 넘어가 잡히더라도 대가도 크지 않다. 수사기관에서 기술유출 정황을 철저히 수사해 법원에 넘겨도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적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처벌 대상과 벌금·손해배상액이 확대됐지만 공허한 외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자들은 재판에서 '국가핵심기술, 영업비밀이 아니다'는 주장으로 형량을 낮춘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국내 장비업체 무진전자 부사장 신모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씨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법원에 넘겨졌다. 무진전자 연구소장과 영업그룹장은 각각 징역 1년6개월, 품질그룹장은 징역 1년, 기구설계그룹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유출·사용이 입증된 영업비밀·산업기술 부분은 유죄로 인정했지만 일부 기술은 국가핵심기술과 첨단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기술 유출 행위는 유죄지만 유출된 기술이 핵심 기술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같은 사건 2심은 세정공정의 '케미컬별 식각비율' 정보와 BI 공정의 '적층 구조·공정 정보'가 논문과 특허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수준이라며 국가핵심기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영업비밀성은 인정하나 국가핵심기술 또는 첨단기술을 부정하는 판결이 많다"며 "국가핵심기술이 인정되면 5~6년의 실형이 나오지만 인정이 안 되면 고작 1~2년이 선고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어 "기술유출 사건 특성상 기존 사례가 부족해 구성요건 판단과 관련해 법원과 견해 차이가 있으나 수사역량을 강화하고 공소유지를 충실히 해 유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국 먹여살릴 기술, 해외법인서 빠져나간다…"대책 시급"

지난 3월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인터배터리 2025’ LG에너지솔루션 부스를 찾은 관람객이 전기차 배터리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연관 없음./사진=뉴스1.

국내 기업들의 첨단 기술이 해외 공장을 통해 유출되는 사례가 이어진다. 해외 공장은 국내 공장이나 본사처럼 보안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전 LG에너지솔루션 수석 연구원 A씨도 중국 난징 공장에서 근무했다. A씨는 해당 공장 기술을 2023년 인도 전기 이륜차 업체인 '올라(OLA Electric)'로 이직하면서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2021~2022년에는 LG디스플레이 중국 공장이 보유한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양산 기술이 중국 경쟁업체에 유출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8월 해당 기술을 유출한 LG디스플레이 직원 출신 2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관련기사 ☞ [단독]시진핑 방문한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기술, 中경쟁사에 넘어갔다)

◆ 정보 부족, 관리 어려워…"해외 법률 등 미리 검토해야"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기술 유출의 통로로 해외 법인이 활용되는 건 국내 본사보다 보안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안학계는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이 확대되면서 기술 유출 방식이 다양화되는 실정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산업보안한림원은 합작회사를 설립할 때 기술 검증을 명목으로 핵심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를 요구하거나, 합작법인 설립이나 기술 이전 협상을 개시한 뒤 기술교육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빼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 국적 직원이 위장 취업한 후 핵심 기술을 유출해 동종업체를 설립하는 사례도 발생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해외사업장 설립 전부터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출 국가의 법률과 제도 등 주요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보안 전담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진출 국가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과도한 기술 자료를 요구하는 등의 법적 분쟁 발생 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진출 전 미리 법률 자문을 받고, 보안 교육 등을 지원하는 정부 제도를 활용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보호 전담 조직의 전문성이 결여되는 문제도 있다"며 "보안 이해도가 높은 경험자들로 이뤄진 전담 조직을 구성해 본사에 정기적으로 보안 현황을 보고하고, 국내외 공조기관의 비상 대응 연락망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해외인력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훈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세무·재무 관련 해외 협력업체 소속 외부 인력이 와서 일하는 경우 내부 인력만큼 관리가 안 돼 보안이 취약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나서서 신뢰할 수 있는 해외 인력풀의 틀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그간의 경험과 관련 실적을 바탕으로 보안체계가 잘 갖춰져 있거나 국내 기업과 협업해서 문제가 없었던 기관들을 확인해 국내 기업들에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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