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없는 SOS" 출발부터 기울었던 여객선, 326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뉴스속오늘]

이재윤 기자
2025.12.15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70년 12월 15일 새벽 제주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남영호'가 전남 여수 남동쪽 약 35㎞(킬로미터) 해상에서 침몰했다.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인공지능)이 구현한 이미지./사진=구글 제미나이

'사망자 326명'

1970년 12월 15일 새벽, 제주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남영호'가 전남 여수 남동쪽 약 35㎞(킬로미터)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338명 중 326명이 사망했다.

남영호는 전날 오후 5시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항에서 승객 200여명과 연말 성수기용 감귤을 싣고 출항했다. 서귀항을 출발해 성산항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남영호는 성산항에서 승객 100여명과 화물을 추가로 실었다. 연말 감귤 운송 물량이 몰려 화물칸을 넘어 갑판까지 감귤 상자를 쌓았다. 승선 정원 초과는 물론 화물 허용 적재량도 4배 가량 초과했다. 성산항을 출항할 당시부터 선체가 약 15도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14일 밤 8시 10분 남영호가 부산을 향해 재출항한 지 약 5시간 뒤 사고가 발생했다. 15일 새벽 1시 15분쯤 강풍이 우현 측면을 세차게 때리면서 갑판 위에 적재돼 있던 감귤 상자 상당수가 좌현 방향으로 쏠렸다. 과적 상태에서 선체 중심을 무너뜨리는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남영호는 급격히 좌현으로 기울었고 무게 중심을 잃으면서 침몰했다.

남영호는 침몰 직전 긴급조난신호(SOS)를 발신했으나, 한국에선 아무도 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당시 신호를 유일하게 수신한 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었다. 일본 측은 조난 사실을 한국에 전달했지만, 해양경찰 측은 이 신호를 무시했다. 정작 구조에 나선 건 한국·일본의 어선이었다.

남영호 침몰 사고 후 시신 운구의 모습 /사진=뉴스1(한국향토문화대전 제공)
SOS보냈으나 '무시'…338명 중 12명만 구조

뒤늦게 상황을 판단한 해경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것은 약 12시간이 지난 오후 1시 50분쯤이다. 탑승자 중 총 12명만 구조 됐는데, 한국 해경이 구조한 인원은 3명에 그쳤다.

사고 발생 40시간 뒤 구조 작업 철수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가 "구조자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오랜 시간 노출 돼 '생존 가능성'이 낮다"며 활동 중단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당시 기술로 '인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선체 인양 계획도 중단했다. 결과적으로 수습된 시신은 40여 구에 불과해 3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은 차디찬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사고 직후 내무부·교통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다. 이에 따라 사고 원인 조사와 책임 규명도 제한적으로 진행됐다.

관련 수사도 순조롭지 못했다. 검찰은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등 선주와 관계자 12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살인의 의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선장에게 금고형, 선주와 일부 관계자에게는 벌금형 또는 무죄가 선고되면서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을 받았다.

1971년 서귀포항에 세워진 남영호 침몰 위령탑. 이 위령탑은 1982년 상효동으로 옮겨진 뒤 2014년 다시 현재의 정방폭포 주차장으로 이설됐다./사진=뉴스1(한국향토문화대전)

정부는 희생자 유가족에게 1인당 4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소송 취하를 요구했으나 유족들은 "진상 규명 없는 보상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부산·제주 등지에서 시위가 이어졌고, 국회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특별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관계 부처 장관들의 증언과 자료 제출이 제한되면서 관리 부실과 해경 대응 등 사고의 구조적 원인은 규명되지 못했다.

남영호 침몰 사고는 정원 초과 금지와 화물 적재 기준 강화, 운항관리자 제도 도입 등 구체적인 해상 안전정책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나 이후에도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선박 사고는 계속됐다. 관리 감독과 대응 미흡 등 똑같은 이유로 YTL30호 침몰(1974년, 159명 사망)을 비롯해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292명 사망), 세월호 침몰 사고 등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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