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17일. 세월호 참사 수색 지원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소방 헬기가 광주 도심 한복판에 추락해 탑승한 소방관 5명이 모두 순직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아 대형 인명 피해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은 이들 희생은 대한민국 소방 역사에 가슴 아픈 비극이자 숭고한 헌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일 오전 10시 54분, 광주 도심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도로. 평범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늘에서 소방 헬기 한 대가 급격히 추락했고 곧이어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CCTV에는 폭발음이 들리자 인근 택시 승객들이 황급히 차량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담겼다. 약 100m 떨어진 식당의 유리창이 기체 파편에 깨질 정도로 충격은 컸다.
추락한 헬기는 세월호 참사 수색 구조 지원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강원소방본부 소방항공대 소속 헬기였다.
사고 당일 소방대원들은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지원하기 위해 오전 8시47분 광주비행장을 출발해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기상 악화로 정상적인 수색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광주비행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지원 임무에 참여했던 신영룡(당시 42세) 소방교는 오전 10시25분쯤 강원소방본부에 전화를 걸어 "비가 많이 내려 수색이 어려워 귀대한다"고 보고했다.
이후 헬기는 오전 10시49분 춘천으로 복귀하기 위해 다시 이륙했다. 하지만 이륙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체는 중심을 잃고 나선형으로 하강한 뒤 광주 도심에 추락했다. 충돌 충격으로 현장에 깊이 1m가 넘는 구덩이가 생길 정도로 기체는 크게 파손됐다.
이 사고로 조종사 정성철(52) 소방경과 박인돈(50)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39)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42) 소방교, 이은교(31) 소방사 등 탑승자 5명이 모두 순직했다.
사고 현장은 고층 아파트와 중·고등학교, 상가가 밀집한 지역이었다. 자칫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헬기는 버스정류장 옆 잔디밭으로 추락했다.
사고 이후 전문가들은 조종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체를 제어하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시민 피해는 발생하지 않아 이들의 마지막 조종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특히 순직한 이은교 소방사는 사고 두 달 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른 대원들 역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자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소방관들이었다.
다섯 소방관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전국 최초의 소방 관련 현충시설인 '순직 소방인 추모비'가 건립됐다.
지난해 광주광역시 풍영정천 천변공원에서 열린 11주기 추모식에는 순직한 소방관들의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등 20여 명이 참석해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