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노" 걸그룹 한마디에 떠들썩…'일베 몰이'의 진짜 문제는

김소영 기자
2026.07.17 07:00
거제 출신 리센느 리더 원이(오른쪽)는 멤버 미나미와 함께 출연한 유튜브에서 담당 PD와 "무섭노"라는 사투리를 주고받았다가 일베어를 사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진=뉴스1

경남 거제 출신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22)의 "무섭노" 발언으로 촉발된 사투리 논란이 점차 잦아드는 분위기다. "무섭노"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식 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언어학자들 반론에 하나둘 입장을 바꾸며 사과하거나 해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남 방언 화자에게조차 일베 감별 잣대가 들이밀어지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씁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도한 일베 몰이는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과 '혐오 표현은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말투만으로 일베 여부를 단정하기보다 혐오 표현이 생겨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올바른 역사·언어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방언이 지역방언 오염시켜"…'무섭노' 논쟁, 정치권 확대

"무섭노"가 일베식 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 회원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아 말끝마다 기계적으로 '-노'를 붙여 사용한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이번 일베어 논란을 맨 처음 공론화한 김현지 PD도 "무섭노"가 비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산 출신인 김 PD는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2023), '남태령'(2026) 등을 연출한 MBC경남 소속 20년 차 PD다.

김 PD는 "경상도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비문의 '-노'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모두 일베식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위기감을 느낀다. 혐오 표현이 놀이가 되다 못해 언어의 원형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일베식 '-노' 사용자를 일베로 단정 짓거나 사투리 사용을 검열하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혐오에 뿌리를 둔 표현임을 알았을 때 사용을 멈추느냐 아니면 익숙하기에 계속 사용하느냐는 태도의 영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상화된 일베식 '-노' 사용에 대해 경상어 화자로서 한 번 더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를 모욕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을 내 고장 사투리로 받아들이길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SNS에 올린 '일베 감별법' 이미지.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부산 출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도 이 주장에 힘을 실으면서 논쟁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조 전 대표는 SNS(소셜미디어)에 일베식 '-노'와 영남 방언을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 글과 함께 이른바 '일베 감별법' 이미지를 올렸다.

그러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당내 싱크탱크인 개혁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무섭노'를) '지역 사투리로 볼 수 있다'는 응답이 55.8%로 '일베식 표현으로 볼 수 있다'(16.7%)는 응답의 3배 이상이었다"고 반박했다.

"'-노', 감탄형 어미로도 사용…비문이라고 일베어 단정 안 돼"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국립국어원은 '-노'에 대해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에서 용언의 어간이나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라고 설명하면서도 "'-노'의 쓰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학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어 단정해 말하긴 어렵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노'가 의문형뿐 아니라 감탄형 종결어미로도 사용된다고 본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에서 경상어의 종결어미'-나', '-노', '-가', '-고'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아'형으로 분류되는 '-나'와 '-가'는 판정 의문문으로 예·아니오를 가리는 의문문에 쓰고, '-오'형인 '-노'와 '-고'는 언제·어디서 등 설명을 요구하는 의문문에 쓰인다.

논란이 된 "무섭노"는 '-오'형이니 본래는 설명 의문문에 써야 하지만 감탄문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노'가 표준어의 '-네'로 대체될 수 있으면 방언 화자들이 사용하는 감탄문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진=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갈무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학위 논문인 '한국어 판정·설명 의문형 종결 형태의 통시적 변화'(하정훈, 2022)에서도 이러한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생각보다) 맛있노", "짝노", "기대 억수로 하고 봤더만 재미 하나또 없노"와 같은 '-노'는 의문형이 아닌 감탄형 종결어미다. '-네'로 바꿔도 의미가 통하는 경우로, 예상과 다른 상황에 대한 놀라움이나 감탄을 나타낸다.

논문은 이러한 감탄형 '-노'가 의문 형식을 띠지만 실제로는 감탄의 기능을 하는 '수사 의문문'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무섭노' 역시 본래 '와 이래 무섭노'에서 의문의 정도가 약한 '와 이래'가 생략되면서 감탄형 표현으로 쓰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진=안태형 동아대 교수

언어학자인 안태형 동아대 기초교양대 교수는 "'무섭노'는 의문사 없이 '-노'만 사용됐기 때문에 전형적인 동남방언(경남방언)의 용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도 "언어는 개인차와 세대차가 존재하는 만큼 이를 단정적으로 해석하긴 어렵다"고 했다.

안 교수는 "원이가 해당 표현을 지역 사회와 주변 어른들의 언어 사용을 통해 습득하여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방언 연구나 논문에서 제시하는 전형적인 용법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의문사 없이 쓴 '-노'가 감탄이나 혼잣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게 비문법적이라는 이유로 '일베의 언어'로 단정 지을 순 없다"며 "실제 언어 사용의 다양성과 변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투리 쓰기 눈치 보여"…전문가 "혐오 묵인하는 사회가 문제"

이번 논란 이후 영남 방언 화자들은 '일베 때문에 일평생 사용한 말투까지 눈치 보며 써야겠느냐'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서울 직장인 박모씨(30대)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써온 표현인데 갑자기 일베 용어라고 하니 당황스럽다"고 했고, 부산 토박이 자영업자 하모씨(40대)도 "우리끼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쓰는데 일베라며 몰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일베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방언 사용자들이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다"며 "이런 논란은 온라인 밈이나 커뮤니티 은어를 사용하는 특정 방식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혐오 그 자체와 싸워야 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김언경 뭉클미디어 인권연구소장도 최근 한 라디오에서 "일베식 혐오 표현이 계속 생겨나고 근절되지 않는 건 우리 사회가 조롱과 혐오를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언어가 사람의 존엄을 훼손하고 혐오를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경계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교수는 "언어는 사회가 강제하거나 통제하기 매우 어렵다. 언어에 대한 인식과 가치는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올바른 역사교육과 비난 표현에 대한 언어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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