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모가 자녀 명의로 적금이나 예금 통장을 개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뱃돈이나 용돈을 모아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자산 형성이나 증여를 목적으로 미성년자 명의 계좌를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 명의 계좌에 넣어둔 돈을 부모가 꺼내 써도 되는 걸까. 법적으로는 해당 자금이 누구의 재산인지, 또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할 의사로 자녀 명의 계좌에 입금했다면 원칙적으로 그 돈은 자녀의 재산이 된다. 증여란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타인에게 무상으로 재산 또는 이익을 이전하거나 타인의 재산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보통 그냥 주는 것을 법적 용어로 증여라고 한다.
실제 대법원은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예금은 원칙적으로 명의자가 예금계약상의 권리를 가진다는 입장이다. 다만 자녀 명의 계좌라고 해서 곧바로 증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증여 여부는 부모에게 증여 의사가 있었는지, 단순히 명의를 빌린 것인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해 판단하게 된다.
부모가 넣은 돈이라고 해도 그 돈이 언제나 부모의 것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증여 의사가 인정돼 자녀의 재산이 됐다면, 부모 역시 친권자로서 관리할 뿐 자신의 재산처럼 자유롭게 처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 재산에 대해 전혀 손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민법은 친권자에게 미성년 자녀의 재산을 관리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녀의 이익을 위한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녀의 교육비나 병원비처럼 자녀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은 친권자의 재산관리 범위에서 허용될 수 있다.
증여가 인정돼 자녀 재산을 부모 개인의 생활비나 투자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재산관리권의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부모의 생활비나 개인 빚을 갚거나, 자신의 투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녀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경우에는 민사상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이미 증여가 이뤄져 자녀의 재산이 됐다면, 부모가 자신의 재산처럼 임의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
증여의 의사로 돈을 준 것이 맞다면 증여세 공제 대상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자는 엄마·아빠·조부모 등으로부터 2000만원까지 10년 합산 기준으로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해당하면 증여세도 없고 신고 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
미성년자 명의 계좌를 활용한 투자나 자산 관리가 늘고 있는 만큼 증여와 단순 보관을 명확히 구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넣은 돈이라도 증여가 인정돼 자녀의 재산이 됐다면, 친권자라고 해서 자신의 재산처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