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4 브랜드 뉴 데이' 등장인물인 타인의 정신을 지배해 행동을 조종하는 텔레파시 능력자 '진 그레이'가 현실에 등장해 무고한 시민 A씨의 의식을 완전히 지배해 살인을 저지르게 한 뒤 텔레파시 연결을 끊어버린다면 형사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진 그레이는 영화 속에서 10m라는 거리 제한 속에서 다른 사람의 정신에 들어가 그 사람의 몸을 조종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여러 사람을 건너가면서 자유자재로 빙의하며 스파이더맨을 위협한다. 진 그레이와 연결이 끊어진 이후에는 정신 조종을 당한 사람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런 텔레파시 능력자가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만약 텔레파시 능력자가 지나가던 행인인 A씨의 의식을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의지대로 다른 사람을 살해하게 만들었다면 어떨까. 범행이 끝난 뒤 연결이 끊기면서 A씨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범행 당시에도 자신의 의사로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처럼 범행 당시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완전히 지배·조종당한 것이라면 A씨에게 형사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형법은 단순히 범죄 행위를 실행한 사람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고의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 인정돼야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A씨는 겉으로는 살인의 '실행자'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타인에게 이용당한 범행의 '도구'에 가까운 존재로 평가될 수 있다.
그렇다면 범죄를 실행하도록 한 텔레파시 능력자는 어떻게 될까. 직접 흉기를 들고 사람을 살해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 능력자가 타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살인죄의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다. 형법은 책임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타인을 도구처럼 이용해 범죄를 실행한 경우 이를 '간접정범'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간접정범은 배후에서 타인을 지배해 자신의 범죄를 실현한 경우를 말한다. 텔레파시 능력자가 A씨를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이게 해 살인을 저질렀다면, A씨를 범행의 도구로 이용한 것으로 평가돼 직접 사람을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살인죄의 간접정범이 성립할 가능성이 생긴다.
A씨가 범행 이후 텔레파시 연결이 끊겨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무조건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범행 이후 사고나 질병 등으로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처벌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범행 당시부터 기억 상실 여부와 무관하게 타인의 지배로 자유의사가 완전히 배제되고 있는 상태였다면 법적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만약 A씨가 범행 당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면 A씨가 범행의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는 영화처럼 텔레파시로 타인을 완전히 조종하는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은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 약물 투여나 강압, 심리적 지배 등으로 타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사실상 박탈한 뒤 범죄를 실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의 저항 가능성과 의사결정 능력, 지배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누구에게 어떤 형사 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