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인 줄 알았던 아내, 알고보니...직업 숨기고 결혼, 혼인 취소 될까

송민경 (변호사)기자
2026.08.19 14:56

[송변의 법으로 본 이슈]

[편집자주] 유명인의 사건부터 생활 속 논란까지 일상과 맞닿은 다양한 사건을 법률과 판례를 바탕으로 변호사 기자가 쉽고 정확하게 풀어드립니다.
드라마 유부녀 킬러 포스터/사진제공=카카오엔터

시어머니가 며느리 구박을 말리는 남편을 향해 사과를 하나 던졌는데 며느리가 날아오는 사과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이를 본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의 운동신경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줄 알았던 며느리의 진짜 직업은 바로 '킬러'다.

드라마 '유부녀 킬러' 속 주인공 유보나의 이야기다. 유보나는 남편과 딸을 둔 평범한 워킹맘처럼 살아가지만 실제 정체는 전설적인 킬러다. 남편에게 자신의 진짜 직업을 숨긴 채 회사와 가정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현실에서도 배우자가 자신의 진짜 직업을 숨긴 채 결혼했다면 어떻게 될까. 배우자는 이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하거나 이혼할 수 있을까.

결혼한다고 해서 부부가 서로의 모든 사생활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자신의 직업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혼인취소나 이혼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업을 숨긴 것이 혼인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민법은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 혼인취소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사기에 대해 대법원은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뿐만 아니라 일정한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알려야 할 사실을 고의로 숨긴 것도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직업과 경제력을 속인 것을 이유로 혼인취소가 인정된 사례가 있다. 법원은 자신을 우체국 국장이라고 소개하고 재산과 수입까지 허위로 설명한 남성의 사건에서 혼인취소와 함께 위자료를 인정했다. 또 자신이 애견샵을 운영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유흥접객원 공급업을 운영한 사실을 숨긴 사건에서도 법원은 숨긴 직업이 혼인의사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혼인취소와 위자료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배우자가 킬러라는 사실을 숨겼다면 어떨까.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에 결혼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된다면 혼인취소가 가능한지를 따져볼 수 있다. 반대로 직업을 자세히 말하지 않았거나 일부 업무를 과장한 정도에 불과하고, 그 사실이 혼인의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면 혼인취소까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혼인취소에는 기간 제한이 있다.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는 사기를 안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다. 배우자가 숨겨왔던 직업의 실체를 알게 됐다면 언제 그 사실을 알게 됐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미 권태성과 오랜 기간 함께 살고 아이까지 낳은 유보나는 어떨까. 이 경우에는 혼인취소보다는 재판상 이혼과 위자료 청구가 현실적인 쟁점이 될 수 있다.

민법은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재판상 이혼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직업을 숨겼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이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보나처럼 자신의 정체를 장기간 숨겨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부부 사이의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졌다면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었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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