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제품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는 국내 석유화학업체 6곳과 각 회사 전·현직 임직원 총 37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1일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위반 위반 혐의를 받는 석유화학사 6곳과 각 회사 대표이사 등 임직원 37명을 기소했다.
PKC 영업본부장과 LG화학 사업부장, 해외 법인장 등을 지낸 고위 임원 2명은 구속 상태로 기소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장영수 전 PKC 대표이사와 김유신 OCI 대표이사 등 나머지 피의자 6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PKC·OCI·LG화학·한화솔루션·애경케미칼·롯데정밀화학·유니드 등 7개 업체는 PVC와 가소제, 가성소다, 염산 등 8개 석유화학제품 품목의 가격 인상을 사전에 약속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이중 한화솔루션은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이들이 2021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5년간 핵심 석유화학제품 8개 품목에 대해 16조3961억원 규모의 담합을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담합 규모는 역대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 부장검사는 다른 품목에 대한 담합 정황을 포착했다며 추가 수사를 통해 이를 규명할 경우 총합 20~30조원의 담합규모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중동 전쟁으로 나프타 수급이 불안정해진 틈을 타 가격 담합을 해 수조원 규모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고 지난 8월 압수수색에 착수하면서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들은 주로 팀장급 모임을 통해 품목별 가격 조정 시기와 폭을 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주요 매출 품목인 PVC와 가성소다의 경우 담합에 대표이사급도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담합 사실 은닉을 위해 가격인상 공문을 실행할 순서까지 미리 정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실행한 정황도 포착했다. 이들은 각사 시장점유율과 기존 가격 수준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전에 낙찰업체 및 입찰가격을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입찰 과정에서는 들러리 세울 업체를 미리 선정해두고 이들을 '초빙'하자는 표현을 쓴 것으로도 나타났다.
새로 부임한 후임자를 타사에 소개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담합이 지속되도록 한 정황도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일부 업체는 경쟁업체 관계자들과 회합을 전담하는 직원(연락책)을 별도로 지정하는 등의 수법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나프타를 주재료로 하는 PVC는 건축자재, 파이프, 전선 피복 등에 널리 쓰이는 합성 플라스틱이며, 가소제는 PVC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화학첨가제다. 이외 담합이 이뤄진 품목은 산업 전반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원재료로 분류된다. 검찰은 이같은 점을 고려해 이들의 범행이 중대한 민생침해, 국가경제 교란 범죄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 경제에 큰 피해를 유발하는 담합 범행 근절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될 수 있도록, 형사사법 제도 개편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각종 공정거래사범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2일부터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번 사건 브리핑이 서울중앙지검의 마지막 사건 브리핑이 됐다. 검찰 관계자는 "아쉽지만 수사와 기소가 융합된 퍼포먼스는 앞으로 나올 수 없다"며 "중대범죄수사청이 안착할 때까지 조력자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전분당, 설탕, 유가 담합 사건 등을 수사하며 대규모 민생범죄 침해 사건을 처리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중대범죄기소4부로 이름이 변경된다. 향후 공정거래 사건 수사에 대해선 "향후 한두 달은 전통적 (수사) 형태보단 공소청-중수청 관계 설정과 MOU 체결 등이 이뤄져야할 것"이라며 "중수청 반독점수사국이 검사의 협력 관계하에 형벌감면신청 사건을 충분히 소화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