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상들이 프로그램으로 표를 싹쓸이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줄을 서는 거 아니겠어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시작된 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중앙매표소 앞. 두산베어스 팬 이모씨(60)는 현장 판매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매표소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씨는 "어제 PC방에서 딸, 아들과 함께 예매를 시도했지만 대기 번호만 뜨다가 매진됐다"며 "경기장 주변에도 암표상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을야구를 맞아 입장권을 구하려는 팬들이 몰리면서 암표 거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찰은 이날 잠실야구장에서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한 집중 단속에 나섰다. 지난 8월28일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 맞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겨냥한 단속이다.
이날 현장에는 서울 송파경찰서 소속 경찰관 37명이 투입됐다. 일부 경찰관은 사복 차림으로 관람객에게 접근하는 암표상이없는지 경기장 주변을 살피며 구역을 돌았다. 송파서장도 현장에 나서 '온 국민이 암표 잡는 암행어사'라는 문구가 적힌 띠를 두르고 야구장 일대를 순찰했다.
경기장 앞에서는 암표 근절 캠페인도 열렸다. 경찰은 부스를 마련하고 암표 관련 퀴즈를 맞힌 시민들에게 상품을 나눠줬다. 경기 시작 전 부스를 찾은 허구연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도 룰렛을 돌리며 야구팬들과 함께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날 집중 단속에서는 암표 거래 사례가 적발되진 않았다. 다만 현장에서 만난 야구팬들은 암표에 대한 불만과 단속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LG트윈스 팬 김유리씨(43)는 "암표 판매 사례를 보면 짜증이 난다"며 "매크로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를 정말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LG 팬 김형씨(70)는 "암표 구매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우리 같은 노인들은 독수리 타자를 쓰기 때문에 예매가 어렵다"고 말했다.
20대 딸과 함께 야구장을 찾은 LG 팬 박은아씨(50)는 "전날 지인까지 모여 5명이 예매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결국 직장 동료가 구해준 표로 경기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외야석을 2만~3만원에 팔거나, 테이블석을 200만원에 내놓은 사람도 봤다"며 "암표 가격이 굉장히 비싼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입장권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관람객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중학교 2학년 딸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은 이해린씨(43)는 "가족이 함께 오려다 보니 여러장을 예매하기 어려워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 정가의 세 배 정도를 주고 구매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가격이 너무 비싸 그다음부터는 공식 예매 사이트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하며 취소표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은 이번 포스트시즌 기간 문화체육관광부, KBO와 함께 경기장 주변 암표 거래를 집중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매표소와 지하철역 출구 등 관람객이 몰리는 곳에 사복 경찰과 순찰팀을 배치해 불법 거래를 단속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지난 8월28일 시행된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은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매를 목적으로 정상적인 예매 절차를 우회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최초 판매자의 동의 없이 상습적 또는 영업적으로 웃돈을 받고 입장권을 판매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