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3년간 살던 전셋집에서 이사하면서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지 못했다. 집주인은 벽지가 변색되고 바닥에 흠집이 생겼다며 도배와 바닥 수리비를 빼겠다고 했다. A씨는 집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흔적까지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집주인이 요구하는 수리비를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것이 정당한 걸까.
전세나 월세 계약이 끝나 이사를 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벽지와 바닥을 수리해야 한다며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지 않는 경우 무조건 세입자가 모든 수리비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용에 따라 생긴 흔적과 세입자의 책임으로 발생한 손상을 구분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수리비를 부담하면 된다.
세입자는 계약이 끝나면 빌린 집을 원상회복해 돌려줘야 한다. 여기서 원상회복이란 입주 당시 상태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임대인에게도 집을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할 의무가 있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더라도 낡거나 흔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수리비를 부담해야하는지 여부는 손상의 정도와 발생 경위, 임대차 기간, 입주 당시 집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결정해야 한다. 장기간 거주하면서 벽지 색이 바래거나 바닥에 일반적인 사용 흔적이 생겼다면 통상적인 사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 바닥을 깊게 긁어 상처가 났거나 벽에 큰 구멍을 내는 등 통상적인 사용 범위를 넘어선 손상이 발생했다면 세입자가 수리비를 부담해야 할 수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주인이 수리비를 요구한다고 해서 청구한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입주 당시부터 있던 흠집까지 세입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집주인이 말하는 손상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세입자에게 책임이 있는지, 수리가 필요한 범위와 비용이 합리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수리비를 아직 지출하지 않았더라도 필요한 수리비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면 손해배상액으로 인정될 수 있다. 반대로 구체적인 손상 내역 없이 포괄적인 견적만 제시했다면 금액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면 집주인은 수리비를 이유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될까. 임대차보증금은 밀린 월세나 관리비, 목적물 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채무 등을 담보하므로 세입자의 책임이 인정되는 금액은 보증금에서 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이 마음대로 임의로 정한 금액을 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임차인의 원상회복 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가 원칙적으로 동시에 이행돼야 한다고 보면서도 원상회복 의무가 사소하고 그 비용이 보증금에 비해 적은 경우에는 보증금 전액의 반환을 거절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수리비가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보증금까지 계속 돌려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입주 전후 사진과 동영상, 집주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하자보수 요청 내역 등은 손상이 언제 발생했는지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세입자는 퇴거 전 집 상태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집주인이 수리비를 요구하면 손상 부위와 수리 필요성, 항목별 견적 및 공제 근거를 서면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합의가 어렵다면 내용증명 등으로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민사 소송까지 고려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