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록은 상관없어요. 팀만 이기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김광현(38)의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주장을 맡게 됐지만 오태곤(35·이상 SSG 랜더스)은 타고난 캡틴의 면모로 팀을 이끌고 있다.
오태곤은 29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 8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2회말 결승 스리런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1볼넷 4타점 1득점 맹활약하며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다.
5연승을 달렸지만 KT 위즈에 2-12로 대패했고 전날은 앞서가던 경기에서 불펜이 무너지며 연장 끝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던 터였다. 연패가 길어질 수 있는 상황. SSG의 캡틴이 팀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양 팀이 0-0으로 맞선 2회초 상대 선발 황준서의 제구가 흔들리며 한유섬에게 볼넷, 최지훈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류효승을 3루수 파울플라이로 돌려세우며 한숨을 돌리려는 황준서를 사정 없이 흔들었다. 초구 시속 125㎞ 포크볼이 가운데로 파고들자 오태곤은 사정없이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구는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선제 스리런 홈런이 됐다. 오태곤의 시즌 두 번째 홈런.
오태곤의 홈런이 한화의 투수진을 흔들었고 팀은 이후 볼넷 5개를 얻어내며 2점을 더 챙겼다. 선발 미치 화이트가 4회까지 1실점으로 막아낸 뒤 어깨에 이상을 느껴 강판됐지만 일찌감치 점수 차를 벌렸고 5회엔 박준영을 상대로 쐐기 1타점 중전 적시타까지 때려내 팀 승리를 견인했다.
앞서 황준서가 흔들리는 상황이었음에도 오태곤은 초구부터 거침 없이 스윙해 홈런을 터뜨렸다. "노림수를 갖고 들어갔다. 황준서 선수가 직구, 포크볼, 커브를 던지는데 과연 주자가 있을 때 저한테 직구를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또 (류)효승이가 그 전에 직구를 쳐서 변화구가 오겠다는 생각에 노림수를 갖고 들어갔는데 그게 운이 좋았다"고 전했다.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오태곤은 "최근에 초구를 잘 안쳤다. 조금 소극적이기도 했고 계속 지켜봤는데 어제도 전부 스트라이크가 됐다"며 "오늘은 과감하게 치자. '나는 수비하고 주루만 하면 되니까 타격은 그냥 과감하게 치자'고 생각하고 들어간 게 좋은 결과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활약에도 오태곤의 시즌 타율은 0.245(49타수 12안타)로 다소 아쉬운 수준이다. 그러나 득점권에선 완전히 다른 타자다. 18타수 8안타, 타율은 0.444에 달하고 11타점을 쓸어 담았다.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오태곤은 "득점권에 노림수를 갖고 많이 들어간다. 득점권에는 이 투수와 포수의 생각을 한 번 더 읽어보려고 하고 '나에게 뭘 많이 던질까' 생각하고 들어가는 게 잘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운이 따라주는 것 같다"며 "전력분석도 너무 잘 해주시고 많이 물어보고 타석에 들어가는데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다.
주장으로서 오직 팀만 생각하는 정신이 득점권에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태곤은 주장직에 대해 "솔직히 너무 신경 쓴다. 애국가를 할 때도 항상 기도를 하는데 '제 기록은 상관없다. 팀만 이기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 그 대신에 부상은 안 당하게 해달라고 한다. 제발 저는 못해도 되니까 팀만 이기게 해달라고 한다"며 "팀이 성적이 나와야 저도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토가 오래, 무난하게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후반에 결정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팬들 사이에선 오태곤을 두고 '9시의 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후 9시가 넘으면 결정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오태곤은 "자꾸 팬분들도 그렇게 말하시더라. 저도 모니터링을 하는데 어제 영상을 보니까 제 타석에 자꾸 시간을 보여주더라"며 "후반에 친다고 하니까 '그래 모르겠다'하면서 조금 편안하게 들어갔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에 경기 초반 팀에 리드를 안긴 홈런포라 의미가 더욱 컸다. 오태곤은 "오늘은 좀 좋았다. 팀이 2연패를 하고 있었고 투수들도 이제 많이 썼기 때문에 점수가 필요했었는데 제가 팀에 도움이 돼서 너무 기분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오태곤은 두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KT 위즈로, 다시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2022년 우승을 경험한 오태곤은 시즌 종료 후 4년 최대 18억원에 FA 계약을 맺었다. 올 시즌은 계약 마지막 해로 개인 성적이 더 중요한 시기다.
오태곤은 "올해가 계약 마지막인데 청라돔은 꼭 밟아보고 싶다. 이게 최대 목표"라며 "랜더스에 와서 선수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 나이 먹고 너무 좋은 팀을 만났다. 최고의 동구장을 짓고 있으니까 거긴 한 번 밟고 은퇴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팀만 생각하는 주장은 우승만을 바라본다. 오태곤은 "우승 반지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 KT에선 가을야구를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여기와서 처음 가을야구를 했는데 우승까지 했다"며 "그 맛과 분위기를 못 느꼈는데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주장으로서 우승을 하면 너무 멋있을 것 같다"는 바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