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8개국 체제를 비판한 알렉산데르 체페린(59)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의 발언과 완전히 다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팀들을 비롯해 약체로 평가받던 팀들이 잇달아 이변을 만들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일부 유럽 강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15일(한국시간) "체페린 UEFA 회장이 48개국으로 확대된 월드컵으로 인해 '흥미롭지 않은 경기들이 많아졌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카리브해 축구협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앞서 체페린 회장은 슬로베니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월드컵을 두고 "흥미롭지 않은 경기들이 많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작은 나라들도 월드컵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며 긍정적인 의미도 추가했지만, 앞선 발언으로 인해 상당한 역풍을 맞고 있다.
체페린 회장의 발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팀들, 또 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고 무대에 나선 팀들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카보베르데를 비롯해 콩고민주공화국, 퀴라소, 아이티,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알제리, 이집트, 가나, 코트디부아르, 모로코,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등 14개국 축구협회는 체페린 회장의 발언을 반박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축구협회는 "우리는 본선에 진출한 모든 나라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며 "모든 팀은 실력으로 그 자리를 얻었다. 모든 팬은 꿈꿀 권리가 있고, 모든 경기는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UEFA 회장의 발언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월드컵 경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축구는 선택된 일부 국가들의 것이 아니다. 축구의 힘은 보편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나라들에게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적 성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한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축구의 발전을 이끌며, 평생 남을 기억을 만들어주는 순간"이라고 전했다.
카보베르데, 퀴라소, 요르단, 우즈베키스탄은 이번 대회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아이티도 1974년 이후 52년 만에 세계무대로 돌아왔다. 이번 대회부터 월드컵 참가국은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났다. 월드컵 참가국 확대가 이들이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월드컵 참가에만 끝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으로 답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강세가 돋보인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A조 1차전에서 체코를 2-1로 꺾고 산뜻하게 출발했다. 선제골을 내주고도 두 골을 몰아치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카타르도 B조 1차전에서 스위스와 1-1로 비기며 월드컵 역사상 첫 승점을 따냈다. 호주 역시 D조에서 튀르키예를 2-0으로 잡았다.
일본은 F조에서 우승후보급 전력으로 평가받는 네덜란드와 2-2로 비겼다. 줄부상으로 전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패배 위기에 몰렸으나, 후반 44분 주전 미드필더 가마다 다이치(크리스탈 팰리스)가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H조 1차전에서 '남미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시아뿐만이 아니다. 월드컵 데뷔국 카보베르데는 이번 대회 초반 최고의 이변을 만들었다. H조 1차전에서 FIFA 랭킹 2위 스페인과 0-0으로 비겼다. 스페인은 무려 27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40세 골키퍼 보치냐의 선방쇼에 막혀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카보베르데는 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점을 수확했다.
영국 가디언은 "작은 나라, 월드컵 데뷔국이 우승후보이자 유럽 챔피언인 스페인을 상대로 0-0 무승부를 거뒀다"며 "불가능이 현실이 된 순간"이라고 조명했다.
반면 유럽 강호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운 출발을 알렸다. 스페인, 네덜란드를 포함해 벨기에도 G조 1차전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0-1로 끌려다니다가 상대 자책골에 힘입어 겨우 승점 1을 획득했다. 체페린 회장도 머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4개국 축구협회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은 역사적인 성취이자 여러 세대가 함께 나눈 꿈의 실현"이라며 "콩고와 아이티 같은 국가들은 오랜 공백 끝에 축구의 가장 큰 무대로 돌아왔다. 이 순간을 수년, 때로는 수십 년 동안 기다려온 수백만 명의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이어 "월드컵 경기들이 어딘가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깊이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는 전 세계 선수들, 감독들, 클럽들, 팬들의 노력과 희생, 열망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