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본즈와 덕아웃에서 싸우지 않았더라면…”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간판 스타들이었던 제프 켄트(58)와 배리 본즈(62)는 지난 2002년 6월26일(이하 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회말을 마친 뒤 덕아웃에서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2회말 3루수 데이비드 벨의 야수 선택을 두고 두 선수의 의견이 갈렸고, 고성이 오가던 중 본즈가 켄트를 거칠게 밀쳤다. 켄트도 본즈의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으로 번졌고, 더스티 베이커 감독과 동료들이 씩씩거리던 두 선수를 겨우 뜯어말렸다. 이날 경기는 샌프란시스코가 7-10으로 졌지만 본즈는 3회 스리런 홈런을, 켄트는 6회 솔로 홈런을 치며 제 몫을 했다.
당대 최고 2루수 켄트와 최고 거포 본즈는 자존심 강하고, 까칠하기로 유명했다. 같은 팀이었지만 앙숙이었고,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켄트가 샌프란시스코로 트레이드된 첫 해였던 1997년 스프링 트레이닝 첫 날 선수단을 실어나르는 밴의 앞자리를 두고 다툰 게 악연의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두 자존심 강한 스타들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덕아웃 싸움까지 이어졌다. 이듬해 켄트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FA 이적하면서 본즈와의 불편한 동거는 6년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24년의 시간이 흘렀다. 켄트는 지난 30일 전성기를 보낸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영구 결번식을 가졌다. 현대야구위원회 투표를 통해 지난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켄트는 등번호 21번이 샌프란시스코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이날 행사에는 베이커 감독을 비롯해 켄트와 함께 뛰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옛 스타들이 초대됐다. 켄트가 그렇게 싫어한 본즈도 이 자리에 있었다. 내빈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눈 켄트는 본즈를 보며 환한 미소로 격한 반응을 보였고, 손을 맞잡은 뒤 진한 포옹을 나눴다. 본즈는 켄트의 양팔을 붙잡고 몸을 흔들며 24년 전 덕아웃 싸움을 재현했고, 좌중은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됐다. 오랜 세월에 앙금도 눈 녹듯 풀렸다.
연설 중에도 켄트는 본즈를 향해 “당신에게도 명예의 전당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말하며 “본즈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여러 번 말했지만 그와 나는 한 번도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적이 없지만 언제든 함께 전쟁터에 나갈 수 있었다”고 본즈와의 관계를 요약했다. 밥 한 번 같이 먹지 않았지만 경기에 나설 때는 그보다 더 든든한 동료는 없었다.
이어 켄트는 “난 정말 대단한 야구를 봤다. 여러분은 배리 본즈 같은 야구를 다신 보지 못할 것이다”며 경외감을 표한 뒤 “스스로를 영원한 자이언츠라고 부를 수 있어 감사하다. 그렇게 만들어준 것은 동료들이었다. 본즈와 내가 덕아웃에서 싸우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지금 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 장담한다”고 말했다.
불편한 관계로 자주 충돌했지만 서로 자극받으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 관계였다. 켄트가 2000년 내셔널리그(NL) MVP에 오르자 이듬해 본즈가 MVP 트로피를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가져왔다. 덕아웃에서 싸웠던 2002년에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두 선수가 함께 뛴 6년간 샌프란시스코는 지구 우승 2회, 포스트시즌 진출 3회를 달성했다.
개성 강한 선수들을 다룬 베이커 감독의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했다. 켄트가 본즈와 싸울 때 호되게 나무랐던 베이커 감독도 이날 행사에서 “켄트는 그 시대 가장 역동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강했다. 켄트와 본즈, 그리고 여기에 모인 팀 덕분에 내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며 두 선수에게 고마워했다.
켄트는 “이쑤시개를 물고 다니던 베이커 감독이 최고였다. 베이커 감독은 프로가 되는 법,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줬다. (본즈와 싸울 때) 나를 벽으로 밀어붙여 ‘그만하라’고 호통을 쳤는데 그 순간 그를 어느 때보다 존경하게 됐다”며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하기 마련이다. 실수했을 때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준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199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한 켄트는 뉴욕 메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샌프란시스코, 휴스턴, LA 다저스 등 6개 팀에서 2008년까지 17시즌 통산 2298경기 타율 2할9푼(8498타수 2461안타) 377홈런 1518타점 OPS .855를 기록했다. MVP 1회, 올스타 5회, 실버슬러거 4회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켄트는 2루수 역대 최다 홈런(351개) 기록도 갖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6년간 900경기 타율 2할9푼7리(3434타수 1021안타) 175홈런 689타점 OPS .903으로 전성기를 보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뛴 6년 모두 100타점 이상 기록할 만큼 찬스에 유독 강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