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통산 17시즌 무려 343경기 1704이닝, 112승.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우완 투수 카를로스 카라스코(39)가 그 긴 세월 동안 빅리그 마운드에서 지적받은 보크는 고작 3차례였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심판과 찰나를 노리는 주자들 틈바구니에서 17년 동안 철저히 공인받았던 투구 동작. 하지만 지난 4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홈 경기에서 한국 무대를 밟은 지 불과 6경기 만에 KBO 심판의 단호한 콜이 그라운드를 갈랐다. 지켜보던 야구팬들 사이에서 "MLB에서도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걸 한국에서 보네", "아주 진귀한 장면을 봤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카라스코에겐 당연히 확신이 있었을 터다. 1700이닝 넘게 타자들을 상대했던 바로 그 투구 동작, 빅리그에선 한 번도 문제 삼지 않던 찰나의 멈춤이 여기서 걸릴 리 없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KBO 심판의 확신은 그보다 훨씬 완고했다. 4일 경기 4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카라스코는 구자욱을 상대하며 보크를 범했고 이는 실점으로 이어졌다. 염경엽(58) LG 감독은 보크 판정 직후 강하게 항의해봤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4회초 삼성이 이 상황과 함께 2점을 추가하며 2-0의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LG는 6회말 대거 4득점을 뽑으며 4-3으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염경엽 LG 감독은 다음 날인 5일 보크에 관련해 어떤 부분을 어필했냐는 스타뉴스의 질의에 끝내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판정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보다 굳게 입을 닫음으로써 묘한 여운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계 관계자는 "문제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주의를 주면 될 것"이라며 베테랑의 오랜 습관이나 미세한 차이에 대해 보다 유연한 소통이나 사전 경고 없이 칼같이 콜을 부른 심판진의 경직된 운영에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진짜 관전 포인트는 이제부터다. 카라스코가 20년 가까이 몸에 밴 투구 메커니즘을 꺾고 KBO 심판의 눈높이에 맞춰 보수적으로 세트 동작을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루틴을 고수하며 또 한 번 심판진과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일 것인가. '진귀한 구경거리'를 남긴 베테랑 에이스의 다음 등판 1루 주자 상황에 그 어느 때보다 날 선 시선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