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으로 앞선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가 8회 1사 만루에 등판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국시리즈(KS) 우승을 노리는 KT 위즈의 불안한 불펜이 첫 경기부터 민낯을 드러냈다.
KT는 3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1차전에서 8-7로 승리했다. 역대 42차례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승리 팀이 우승한 사례는 31차례(73.8%)였다.
결과는 승리였지만, 과정은 아찔했다. KT는 6회까지 안현민, 김현수, 한승택의 릴레이포가 터지며 8-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7회초 선발 데이비스 대니엘이 구자욱에게 투런포를 허용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문제는 이후였다. 7회초 무사 1루에서 구원 등판한 두 번째 투수 로건 앨런이 만루 위기를 자초한 뒤 ⅓이닝 2피안타 2실점으로 흔들렸다. 손동현이 구원 등판했지만, 김헌곤, 이재현에게 아찔한 파울 타구를 연거푸 허용하자 공 8개 만에 김정운으로 교체됐다. 김정운 역시 이재현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한 뒤 김도환을 3구 삼진으로 잡았으나, 8회초 선두타자 박승규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고 오원석과 교체됐다.
8회 등판한 오원석마저 구자욱, 김성윤에게 안타, 김영웅에게 볼넷을 주고 만루 위기를 초래하면서 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니엘이 7회초 무사 1루에서 내려가 마무리 박영현이 8회초 1사 만루에 등판하기 전까지 불펜 투수 4명이 합작한 성적은 고작 1⅓이닝 4실점이었다.
결국 이강철 KT 감독은 2년 연속 30세이브의 마무리 박영현을 호출했다. 박영현은 폭투로 승계주자 한 명의 득점을 허용했지만, 1⅔이닝 동안 타자 5명을 모두 범타 처리했다. 특히 9회에는 세 타자를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가까스로 승리를 지켰다.
사령탑이 진즉부터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이 된 셈이다. 이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삼성의 강력한 좌타 라인을 상대할 왼손 불펜 운용을 고민했다. 좌완 선발인 로건과 오원석을 불펜으로 돌린 것도 그 이유였다. 오원석의 경우 9월 이후 불펜으로 전환해 10경기 2승 무패 2홀드, 평균자책점 1.32, 13⅔이닝 10탈삼진으로 좋은 성적을 내 신의 한 수로도 여겨졌다.
그러나 로건은 7회 삼성의 추격을 막지 못했고, 8회 좌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투입한 오원석도 구자욱과 김성윤에게 연달아 안타를 허용했다. 특히 김영웅에게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 감독도 자신의 판단을 자책했다. 경기 후 "오늘 교체 미스는 내 탓이다. 큰일 날 뻔했다"며 "원래 생각했던 것은 로건보다 오원석이었다. 그런데 점수 차가 8점 차가 되면서 순간적으로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이어 "거기서 확실하게 끊고 갔어야 했는데 '로건을 좀 여유 있게 쓸까' 하는 생각에 넣었다가 스텝이 꼬였다. 로건 대신 오원석을 먼저 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큰 점수 차에서 투수 운용에 여유를 두려던 판단이 오히려 마무리 조기 투입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로건 한 명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김정운과 오원석도 제구와 승부처 대응에서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 역시 KT 불펜의 약점을 확인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경기 후 "0-8로 끌려가다 상대 필승조를 끌어내 7-8까지 따라붙은 것은 분명한 소득"이라며 "중후반 싸움이 되면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상대 필승조를 상대로도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T의 고민은 남은 시리즈에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시리즈는 최대 7경기까지 이어진다. 선발 투수가 매번 6이닝 이상을 책임진다는 보장도 없다. 8점 차 리드에서조차 박영현이 5개의 아웃카운트를 책임져야 한다면 접전에서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박영현은 "8회 1사 만루에 올라갔을 때가 가장 떨렸다"며 "앞으로 3승 남았다. 내가 뒷문을 잘 막아야 우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수 한승택은 "젊은 투수들이 많고 첫 경기라 긴장했던 것 같다. 내일부터는 자기 공을 던지면서 잘할 것"이라고 동료들을 감쌌다.
이 감독은 삼성 좌타 라인을 막을 새로운 대안으로 팀 내 유일한 좌완 불펜 전용주의 활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첫판을 잡아낸 KT가 남은 시리즈에서 박영현까지 연결하는 7~8회 불펜 운용을 어떻게 정비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