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 같은 매치업이 성사됐다. 정규시즌 막판 '배트 투척'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KT 위즈 외야수 최원준(29)과 삼성 라이온즈 에이스 아리엘 후라도(30)가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격돌한다. 무대는 한국시리즈(KS) 3차전, 장소는 공교롭게도 사건이 벌어졌던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이하 라팍)다.
이들의 질긴 인연은 약 한 달 전인 지난 10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 1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한 최원준은 3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후라도와 6구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냈다. 하지만 출루 직후 그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들고 있던 배트를 그라운드에 강하게 내동댕이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롯데 빅터 레이예스와 피 말리는 200안타 및 최다 안타 신기록 경쟁을 벌이던 터라 안타 하나가 너무나도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유인구 승부에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었던 최원준의 이 행동은 큰 파장을 낳았다.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에 KT 주장 장성우는 "자기 기록 채우려고 나왔나, 행동 똑바로 해라"라며 강하게 질책했고, 결국 최원준이 더그아웃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장면까지 중계화면에 잡혔다. 경기 직후 최원준은 아내의 SNS를 통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며 팬들과 상대 팀에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무대는 정규리그가 아닌 가을야구의 정점인 한국시리즈로 바뀌었다. 1위 KT와 2위 삼성, 두 팀이 대망의 KS 무대에서 맞붙게 되면서, 최원준과 후라도는 문제의 장소였던 라팍에서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됐다.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KIA를 꺾고 올라왔기에 맞대결이 성사됐다.
달라진 것은 경기 날짜만이 아니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이제 최원준의 어깨를 짓누르던 '개인 타이틀'에 대한 압박감은 없다. 오직 팀의 두 번째 통합 우승을 향한 간절함만이 남아있다. 이번 시리즈 첫 선발에 나서는 후라도 역시 안방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KT 공격의 첨병인 최원준을 반드시 봉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마운드에 오른다.
팬들의 시선은 벌써부터 6일 1회초 벌어질 두 사람의 첫 타석 맞대결로 쏠리고 있다. 앞선 1차전과 2차전에서 모두 최원준이 1번 타자로 배치됐기에 이번에도 그럴 공산이 크다. 만약 이번에도 후라도의 집요한 승부 끝에 볼넷이 나온다면 어떨까. 뼈저린 반성의 시간을 가졌던 최원준이 이번에는 배트를 그라운드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할 것이라는 농담 섞인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더그아웃에는 여전히 매의 눈으로 선수단을 통솔하는 캡틴 장성우가 든든하게(혹은 무섭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기록이라는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팀 우승을 위해 방망이를 휘두르는 최원준. 그리고 팀의 명운을 걸고 그 방망이를 헛돌게 만들어야 하는 후라도. 라팍에서 다시 열리는 두 남자의 리턴 매치는 이번 한국시리즈 3차전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최고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