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꿈꿔온 월드컵 출전을 눈앞에 두고 휠체어가 부러졌다. 자신의 몸에 맞는 휠체어는 전 세계에 단 두 대뿐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20세 청년에게 기적처럼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평생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여행객이 그의 꿈을 지켜줬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지난 3일(한국시간) 아일랜드 휠체어 럭비 리그 국가대표 오란 스페인(20)의 특별한 사연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오란은 호주 울런공에서 열리는 2026 휠체어 럭비 리그 월드컵을 준비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했다. 훈련 도중 자신이 사용하던 휠체어가 부러진 것이다.
문제는 오란의 휠체어가 특수 제작된 장비라는 점이었다. 오란은 다른 팀 동료들보다 체구가 훨씬 작았다. 이 때문에 동료들의 휠체어를 빌려 사용할 수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오란의 몸에 맞는 휠체어는 단 두 대뿐이었다. 그중 한 대가 부러졌고, 나머지 한 대는 무려 지구 반대편인 오란의 조국 아일랜드에 있었다.
월드컵 출전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휠체어 럭비 리그에서 사용하는 휠체어는 선수의 체형에 맞게 제작될 뿐만 아니라, 경기 중 빠른 속도와 강한 충돌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일반적으로 경기용 휠체어의 가격은 4000~9000호주달러(약 380만~850만원) 수준이다. 매체는 "호주 휠체어 럭비 리그 대표팀 주장 베일리 매케나가 사용하는 휠체어는 1만5000호주달러(약 1400만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오란의 휠체어도 고도로 특수 제작된 장비였다. 바퀴는 기울어져 있고, 앞쪽 충돌 방지 막대는 둥글게 제작됐다.
오란의 가족은 부러진 휠체어를 용접해 수리하는 방법도 시도했다. 하지만 경기 도중 강한 충격을 받으면 다시 부러질 위험이 있었다. 결국 수리한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오란의 어머니 수잔 스페인은 "휠체어가 부러졌을 때 오란의 얼굴에 나타난 절망적인 표정만 봐도,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오란과 가족들은 어떻게든 아일랜드에 있는 예비 휠체어를 시드니까지 가져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오란의 삼촌인 오스틴 스미스는 아일랜드 국영 공영방송 RTÉ 라디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호주 시드니로 향하는 여행객 가운데 휠체어를 대신 운반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우연히 라디오를 듣고 있던 아일랜드 관광객 데이드레 도노휴가 사연을 접하고 직접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도노휴는 원래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호주 여행을 계획했다. 마침 금요일에 이 방송을 들었고, 이틀 뒤인 일요일 호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도노휴는 "처음에는 '지금 나에게 하는 이야기인가. 내가 잘못 들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직접 연락했다"고 밝혔다.
이어 "휠체어는 환승하는 모든 항공편에 자동으로 옮겨 실어졌다. 가져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덕분에 휠체어는 웨일스와의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당일 무사히 호주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란과 어머니 수잔은 직접 공항을 찾아 도노휴를 만났고, 소중한 휠체어를 전달받았다.
오란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휠체어 덕분에 다시 경기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했다.
이어 "나는 지난 4년 동안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해 노력했다. 여름이면 매주 경기를 뛰기 위해 영국 위건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며 "도노휴 덕분에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오란에게 국가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이었다. 그는 두 살 때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희귀 유전성 면역결핍 질환인 XLP를 진단받았다.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뒤에도 스포츠를 향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란은 "어렸을 때는 비장애인 럭비 경기에 출전하고 싶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조국을 대표해 뛰는 것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그 목표가 조금 달라졌지만, 지금의 길을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며 "아일랜드 대표팀의 녹색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대표팀 매니저이기도 한 오란의 어머니도 아들이 다시 월드컵에 나설 기회를 얻은 것에 감격했다.
수잔은 "오란이 그동안 훈련해 온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은 큰일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수년 동안 함께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다행히 낯선 여행객의 도움 덕분에 오란은 다시 코트에 설 기회를 얻었다.
앞서 오란은 휠체어 파손으로 미국과의 월드컵 첫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아일랜드는 미국을 110-10으로 대파했다.
하지만 예비 휠체어가 무사히 도착하면서 오란은 지난 3일 웨일스전을 앞두고 다시 동료들과 함께할 준비를 마쳤다. 아일랜드는 이 경기에서 68-28로 승리했다.
오란의 가족도 도노휴에게 특별한 선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경기 입장권과 아일랜드 대표팀 공식 폴로셔츠, 모자, 기념 페넌트 등을 건넸다.
도노휴는 이번 호주 여행 일정에 울런공 방문을 추가해 아일랜드 대표팀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