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7일)에는 볼넷이 문제였다. 하루가 지나자 이번에는 수비가 무너졌다. 정규시즌 90승을 거둔 1위 팀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KT 위즈가 한국시리즈(KS) 우승을 향한 마지막 기회에서 한 이닝에 무려 8점을 헌납하는 참사를 겪었다. 반대로 삼성 라이온즈는 기적의 업셋 우승 초읽기에 들어갔다.
KT는 8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5회말에만 8실점하며 8회초 현재 삼성에 1-11로 크게 뒤처졌다.
불과 하루 전에도 치욕적인 기록을 썼던 KT다. 7일 열린 4차전에서 KT 투수진은 12개의 사사구(9볼넷 3몸에 맞는 공)를 내줬다. 역대 한국시리즈 한 경기 팀 최다 사사구 허용 신기록이었다. 삼성과 KT가 합작한 사사구 19개 역시 한국시리즈 한 경기 양 팀 합계 최다 기록이었다.
당시 KT 선발 로건 앨런(29)은 1이닝 5피안타 4사사구 6실점으로 무너졌다. 선발이 일찌감치 무너지고 불펜마저 제구 난조에 빠지면서 5-10으로 패했다.
그런데 5차전에서는 더 심각한 장면이 나왔다. KT는 벼랑 끝에서 라인업을 대폭 바꿨다. KT는 최원준(지명타자)-장진혁(우익수)-김현수(1루수)-샘 힐리어드(중견수)-김민혁(좌익수)-류현인(2루수)-허경민(3루수)-한승택(포수)-권동진(유격수)으로 타선을 구성했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KT는 3회초 한승택의 안타와 권동진의 좌전 안타, 최원준의 희생번트로 1사 2, 3루 기회를 잡았다. 장진혁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올렸다. 그러나 3회말 선발 데이비스 대니엘(29)이 흔들렸다. 김지찬의 볼넷을 시작으로 구자욱과 르윈 디아즈의 연속 적시 2루타, 김영웅의 중전 적시타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1-3으로 역전당했다.
KT는 고영표(35)를 조기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5회말에는 마운드보다 수비가 문제였다. 시작은 선두타자 박승규의 평범한 땅볼이었다. 유격수 권동진이 앞으로 달려 나오며 타구를 잡으려 했지만 포구에 실패했다. KT가 가장 피해야 할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한 순간이었다.
구자욱의 우전 안타가 이어졌고 디아즈는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최형우가 우전 적시타로 4-1을 만들었다. 악몽은 계속됐다. 김영웅의 타구를 이번에는 2루수 류현인이 잡지 못했다. 두 번째 수비 실수가 나오면서 점수는 5-1로 벌어졌다. 삼성은 한 번 잡은 고삐를 놓지 않았다. 최형우 대신 대주자로 들어온 김성윤은 이재현의 좌익선상 적시 2루타에 홈을 밟았다.
류지혁이 자동고의4구로 출루하면서 다시 만루가 됐다. 강민호가 2루수 방면 땅볼을 때리자 KT는 병살타를 노렸다. 그러나 류현인의 2루 송구가 제대로 향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주자 2명이 홈을 밟았다. 실책이 실책을 부르고, 실점이 또 다른 실점으로 이어졌다. 뒤이어 김지찬이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 3루타까지 터뜨렸다. 삼성은 5회말에만 무려 8점을 뽑아 11-1까지 달아났다.
한국시리즈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한 이닝 대량 실점이었다. 역대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 실점 기록은 12점이다. 2001년 10월 2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 3회말에만 12점을 내줬다. 당시 삼성은 2회초 8점을 뽑아 8-2로 앞섰지만, 곧바로 12실점하면서 결국 11-18로 패했다.
2004년 11월 1일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도 삼성은 현대 유니콘스에 2회초 8점을 허용했다. 현대가 8-7로 승리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했던 경기였다. 이번에는 정규시즌 1위 KT가 그 불명예스러운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 이닝 8실점은 역대 공동 2위에 해당하는 대량 실점이다.
KT는 올해 정규시즌 90승 5무 49패, 승률 0.647로 창단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2021년 이후 5년 만에 정규시즌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강점이 사라졌다. 4차전에서는 투수진이 사사구 12개를 남발했고, 5차전에서는 내야진이 잇따라 수비 실수를 저질렀다. 1승 3패로 벼랑 끝에 몰려 있던 KT는 상대팀 안방에서 12년 만의 우승을 지켜봐야 할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