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등장으로 달아올랐던 삼성물산 주가가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엘리엇이 장내에서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삼성물산 공격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소송’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대상인 제일모직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15일 삼성물산은 전날보다 2.34% 하락한 6만6800원에 마감했다. 이는 엘리엇이 처음 존재를 드러낸 지난 4일 이후 이틀간 주가가 급등하며 지난 5일 7만6100원으로 마감한 것과 비교하면 12.2% 급락한 수준이다.
삼성물산의 주가 약세는 엘리엇의 추가 지분 매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외국인들은 엘리엇이 처음 합병에 반대하며 등장했던 지난 4일과 5일에 249만주를 순매수했고 지난 9일에도 51만주를 사들였다. 그러나 10일부터는 장내에서 계속 주식을 팔고 있다. 10일부터 이날까지 순매도한 주식은 60만주가 넘는다. 기관들도 이달 10일을 제외하면 8일부터 ‘팔자’ 를 취하고 있다.
주주총회 참석주주 확정을 위한 주주명부 폐쇄가 지난 11일 이뤄졌다는 점도 주가 하락의 배경으로 꼽힌다. 주주명부 폐쇄 후에는 주식을 팔아도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단순한 주총 참가용으로 사 모은 주식이라면 단기 매물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중요한 경영의사와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면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보통 지분 경쟁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주가가 상승하는데 삼성물산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등장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 계획에 암초가 등장한 건 사실이지만 합병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점도 삼성물산 주가 하락의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1대0.35다.
삼성물산 주가에 별다른 변동이 없어도 제일모직의 주가가 하락하면 합병비율과 간극이 벌어져 두 기업이 동반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종가기준으로 삼성물산 주가는 제일모직(16만9000원)의 0.39배로 합병비율을 초과한 상황이다.
특히 이날은 한화투자증권이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하는 외국인들이 많고 국내주주인 국민연금도 삼성물산의 우군이 될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양사 합병을 부정적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낸 여파로 제일모직 주가가 전거래일보다 7% 넘게 급락했다.
일각에선 제일모직과 합병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엘리엇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삼성물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주가가 약세를 보인 이유라고 해석한다.
A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합병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와 가치를 낼 수 있다”며 “삼성 바이오사업의 잠재력과 함께 그룹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지배구조 가치는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이 보고서에서 엘리엇이 ISD(투자자-국가간 소송)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한데 대해서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 ISD 제소는 투자자의 분명하고 합리적인 기대를 침해하면서 투자자의 재산이 국가로 이전 또는 몰수되는 것과 동등한 효과를 나타나는 등 한국 정부가 FTA(자유무역협정)를 위반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해외 소송으로 이어지면 합병비율이 국내법에 규정된 ‘주가’ 기준이 아니라 엘리엇이 주장하는 ‘자산’ 기준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ISD 판정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데 해외 소송에서 합병비율을 바꾸라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문에 주가를 합병비율의 기준으로 정한 국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