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ESG 소외 방치 안돼, 성급한 표준화 지양해야

황국상 기자
2021.08.18 04:40

[ESG를 만드는 사람들] 정연만 고문, 김현아 변호사 - 법무법인(유) 태평양 ESG랩 환경TF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올해 들어 국내외 할 것 없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는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ESG 친화적 경영체제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산업 생태계가 복잡다단한 기업들간의 거래로 구성돼 있는 상황에서 상위 단계에 위치해 있는 대기업만의 변화만으로 현재의 ESG 관련 규제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ESG랩 환경TFT(태스크포스팀)의 정연만 고문과 김현아 변호사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들은 투자자들의 투자회수 압박 등 외부 상황 변화에 대해 바로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문제는 중견·중소기업"이라며 "1·2차 벤더(공급사) 등 공급망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공급망 관리라고 하면 물품 대금의 조속한 지급을 통해 협력사의 현금 유동성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공급망 관리 개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 경영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선언인 RE100만 하더라도 개별 기업만의 노력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 산업 생태계를 감안할 때 부품사를 관리하지 않고서는 RE100 달성 자체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애플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RE100 동참 선언을 하도록 압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품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초대형 일류 기업이라면 자체 대응 능력이 이미 우수해 걱정할 게 안된다. 문제는 규모가 영세한 중견·중소기업이다. 탄소국경세, RE100 등 글로벌 교역을 지배하는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질 때마다 산업 생태계 전반이 동요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를 이행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 걸까.

법무법인(유) 태평양 ESG랩의 정연만 고문(전 환경부 차관)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정 고문과 김 변호사는 "세계적 기업들은 자체 공급망 관리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급업체를 관리하고 있다"며 "환경·사회 등 주요 이슈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거래에서 배제하는 방식, 자사가 활용하는 기술을 공급업체가 이용하도록 하는 방식, 상생 차원에서 공급망 업체에 기술지원까지 해주는 방식 등 다양하다"고 했다.

또 "아직 우리 대기업의 경우 스스로 탄소중립 등 과제를 이행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공급망 기업에까지 이를 요구하거나 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국내 환경 관련 규제의 합리적 구조조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법률가 입장에서 기존의 다양한 환경규제들 사이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관계에 놓인 것도 많은 등 규제가 너무 복잡하다"며 "여기에 기후변화를 이유로 추가된 것까지 더하면 기업들이 준법경영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ESG 친화적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존 규제들을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뭣보다도 최근 국내에서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는 ESG 관련 표준화 작업에 대해서도 "조급해서는 안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한국형 ESG 지표'(K-ESG) 제정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환경부 주도로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산업 분류체계) 제정도 곧 마무리된다. 전 국가적 탄소감축을 다루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도 이달 발표됐다. 금융위원회는 ESG 관련 정보공시의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이미 올 초 내놨다.

법무법인(유) 태평양 ESG랩의 김현아 변호사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2015년 발효돼 우리나라가 가입돼 있는 파리협약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할 의무가 부과돼 있는 데다 지난해 정부의 탄소중립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상황에서 이같은 일련의 로드맵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로드맵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민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정 고문과 김 변호사의 지적이다.

정 고문은 "ESG 정보공시가 법적 의무임과 별개로 공시를 통한 기업의 선언이 향후 투자자,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법적 쟁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며 "성급하게 제도를 만들기보다 법률적 리스크까지 고려한 세심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환경 이슈가 경제 이슈가 된 상황에서 글로벌 동향을 감안하지 않은 채 한국만의 제도를 성급하게, 과도하게 세세하게 만들었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민간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큰 틀에서 일단 제도를 만들고 추후 계속 개선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송무에서 개개 규제 대응 등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자문 등 업무를 수행해왔던 로펌도 진화하고 있다. 이미 사전·사후 법률 리스크 대응이라는 종합 컴플라이언스 자문을 담당하고 있지만 최근 ESG의 대두로 과거의 컴플라이언스 자문 외에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자문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지난해 10월 이준기 변호사 총괄 하에 ESG랩을 신설하고 정연만 고문, 김현아 변호사를 비롯해 종전 기업법무와 M&A(인수합병), 환경·노동·공정거래 및 금융 등 부문 전문가들을 한 데 모았다. 태평양 ESG랩에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우병렬 전 기획재정부 장기전략국장(외국변호사), 이연우 전문위원(국제학 박사) 등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법무법인(유) 태평양 ESG랩의 정연만 고문(전 환경부 차관), 김현아 변호사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