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원칙금지의 예외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금융당국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 판단과 입증 부담을 기업에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곳곳에 '거래소가 따로 정한다'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모호한 기준을 둔 채 주주보호 노력의 입증 책임과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 몫으로 남겨서다.
재계도 우려를 나타냈다. 주주보호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유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대체로 기업들은 제도 도입 취지와 별개로 새로운 규정이 자금조달·사업재편·신사업 성장 기회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
6일 금융위원회(금융위)와 한국거래소(거래소)가 발표한 '중복상장 원칙금지·예외허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물적분할이나 일반 자회사 상장을 하기 위해서는 모회사 이사회가 5대 주주충실의무를 이행하고 모회사 주주의 동의를 받거나 거래소의 엄격한 개별심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 코스피 상장기업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곳곳에 거래소가 따로 정한다거나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거나 하는 모호한 기준이 많아 기업의 혼란을 키우고 규제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특히 이미 상장된 기업이라도 새로운 혁신 기술이나 신사업을 추진할 때 별도 자회사를 세워 외부 투자를 받는 경우가 다수 존재하는데, 이런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했다.
기준이 모호한 만큼 주주보호 노력을 입증할 책임과 비용도 기업이 떠안게 됐다. 코스닥 업계 관계자는 "결국 주주보호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를 개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건데, 그 과정에서 주주영향 평가도 외주를 줘야 할 것이고 법적 해석을 받는 과정에서도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고 했다.
사실상 충족이 불가능한 요건을 제시해 놓고 책임은 기업에 미뤘다는 지적도 있다. 물적분할의 경우 '3%룰'이 적용되면서 아예 모회사 주주 동의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룰은 3%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보유한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태에서 출석한 주주의결권의 과반 및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1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제도다. 이 관계자는 "3%룰이 적용되면서 감사선임에서도 투표 요건이 충족되지 않거나 부결이 난 기업들이 있었다"며 3%룰하에서 주주동의를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토로했다.
주주 동의를 받지 못한 기업이 마련해야 하는 일반주주 보호방안도 부담이 상당하다. 익명을 요청한 상장기업 관계자는 "주주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모회사 이사회의 5대 주주충실 의무에 따라 일반주주 보호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여기에 구주매출을 활용한 현금배당이나 자기주식 소각, 자회사 주식 현물배당 등 자회사 주식 분배가 포함됐다"며 "거래소가 개별심사를 할 때 일반주주가 만족할만한 수준인지를 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되면 지배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해 사실상 자회사 상장은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미 상장을 전제로 FI(재무적 투자자)의 투자를 받은 자회사에 대해서도 당국은 해법 없이 엄격한 심사 방침만 내놨다. 거래소가 일반 자회사 상장을 사안별로 심사하겠다고 했지만 FI와의 상장 조건부 계약 이행이나 투자회수 목적으로 하는 자회사 상장은 더욱 엄격하게 보겠다는 내용이 가이드라인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상장기업 관계자는 "결국 FI의 지분을 최대주주가 다시 사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이렇게 되면 시장가치보다 더 비싸게 주고 매입할 수밖에 없어 모회사 주주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매입 과정에서 모회사 이사회가 적절한 계약을 맺었는지 등을 놓고 주주충실의무 등이 부딪치면서 법적 다툼이 늘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에 부담을 지우고도 정작 규제 실효성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복상장 원칙금지에 찬성했던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도 이번 가이드라인은 구멍이 많은 모호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사실 주주총회를 열어보면 보통 일반주주는 참석하지 않고 절실한 지배주주는 100% 참석하기 때문에 3%룰을 적용해도 쉽게 과반은 넘길 수 있다"며 "MoM(소수주주 과반 동의제)을 적용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당국이 판단을 기업과 시장에 미룰 것이 아니라 거래소에 관련 규정을 사전·사후에 해석해주는 전담 부서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통보했으니까 알아서 하라는 게 아니라 금융위나 거래소에서 좀 더 명확하게 사안을 판단해 줄 수 있는 기구나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보조적인 장치가 있어야 취지를 살리면서 VC(벤처캐피털)나 PE(사모펀드) 등 외부 투자자도 계속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