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에 멀쩡한 A3급 기업도 '날벼락'…돈줄 막혔다

조철희 기자, 방윤영 기자
입력 2026.11.06 05:30 수정 2026.11.06 05:30

[A3급 신용 잔혹사](종합)

[편집자주] 기업 한 곳의 신용사건이 같은 신용등급의 다른 기업들까지 흔들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A3급 기업어음과 전단채 발행잔액은 급감했지만 최우량 A1급은 증가했다. 신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판매사의 금융당국 검사·제재 부담이 커지면서 정상기업의 돈줄까지 마르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 자금조달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했다.

홈플러스 사태 후 A3급 돈줄 막혔다…CP·전단채 잔액 45% 급감

홈플러스 사태 전후 CP·전단채 신용등급별 발행잔액/그래픽=윤선정

지난해 3월 홈플러스 사태 이후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A3급 CP(기업어음)와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발행잔액은 1년 8개월 만에 45% 가까이 줄어든 반면 최우량 등급인 A1급은 30% 늘었다. 신용사건이 터질 때마다 판매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부담이 커져 증권사들이 A3급 상품 취급을 줄이면서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기업들까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A3급(A3+·A3·A3-) CP·전단채 합산 발행잔액은 지난해 2월 말 5조7062억원에서 올해 10월 말 3조1606억원으로 44.6%(2조5456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A1급 발행잔액은 248조8766억원에서 323조6103억원으로 30.0%(74조7337억원) 증가했다. 전체 CP·전단채 발행잔액에서 A3급이 차지하는 비중도 약 2.0%에서 0.9%로 낮아졌다.

홈플러스 사태 직후인 지난해 3~5월 석 달간 A3급 CP·전단채는 상환액이 신규 발행액을 웃돌면서 순발행액이 마이너스 1조6009억원을 기록했다.

CP 시장 전체의 발행 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올해 상반기 CP 발행액은 282조754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9.0% 늘었다. 이 가운데 A1급 비중이 92.1%에 달했다. 올해 3분기 전단채 시장에서도 A1급이 93.5%를 차지했다. 시장 전체는 커졌지만 신용등급에 따라 자금조달 여건은 엇갈린 셈이다.

신용사건 뒤 판매사에 집중되는 감독 부담이 A3급 상품 취급을 줄이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투자자 피해가 생기면 여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가능성도 커져 증권사들이 신규 상품 취급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홈플러스에 이어 중앙그룹 계열사의 유동성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는 2021년부터 매년 A3급 CP·전단채를 대규모로 중개해왔지만 홈플러스 사태 뒤로는 신규 취급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증권사들도 상품심사 기준을 강화하거나 개인투자자 대상 판매를 줄이는 추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A3급 상품은 중개수익이 크지 않은 반면 신용사건이 발생하면 판매사가 부담해야 하는 검사와 민원, 제재 등 후속 리스크가 상당하다"며 "최근에는 수익성보다 사후 부담을 고려해 취급 여부를 결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CP·전단채 판매 창구가 좁아진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무보증 일반회사채 발행액 중 BBB급 이하 비중은 2.2%에 그쳤다. 회사채 시장 역시 우량기업 위주로 돌아가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자금조달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A3급이라고 모두 부실기업인 것은 아니다. 같은 등급이라도 기업별 재무상태와 채무상환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 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와 중앙그룹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A3급 비우량물 취급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관리 강화도 필요하지만 정상적인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까지 막혀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 번 터지면 다 물어줘야"…제재 공포에 증권사 A3급 손 뗀다

CP 신용등급 보유 기업 중 A3급 이하 비중/그래픽=이지혜

과거 LIG건설·삼부토건 사태, 동양그룹 사태 등 대형 신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와 무관한 기업의 회사채·CP(기업어음)까지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까지 겹쳐 증권사들이 비우량물 취급을 줄이는 추세다. 홈플러스·중앙그룹 사태 이후 불완전판매 등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위험이 커지면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사실상 막혀 애꿎은 기업만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홈플러스 ABSTB(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판매 증권사들의 제재 수위를 논의했다. 조만간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부터 홈플러스 전단채 발행 주관사이자 판매사인 신영증권을 비롯해 하나증권, 현대차증권 등에 대해 검사를 벌인 뒤 지난 9월부터 제재심을 열고 본격적인 제재 절차에 나섰다.

업계에선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기조가 강화되면서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부담이 커졌다고 토로한다. 금감원은 지난 7월 중앙그룹 회사채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발행 주관사와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한양증권 등을 상대로 검사에 착수했다. 지난 6월 이찬진 금감원장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한 일"이라며 "부도 직전까지도 회사채를 발행해 인수하고 개인 투자자에게 리테일 판매가 된 것 같다"고 언급한 뒤다.

금감원은 증권사가 재무 악화 위험을 충분히 확인하고도 회사채를 발행했는지, 신용등급이 낮아 위험도가 높았던 채권인 만큼 투자자에게 관련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고 투자자 성향에 맞게 안내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 변화는 단순히 '증권사 때리기'가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자금조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금감원 제재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홈플러스·중앙그룹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우량물 취급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교적 재무상태가 건전한 기업들까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CP는 기업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융통어음으로 신용등급은 A1·A2·A3·B·C·D 순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A3급 이상이 투자적격 등급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CP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 366개사 중 상대적으로 비우량 등급인 A3급 이하 기업은 70개사로 전체의 19%에 이른다. A3+급에는 두산·코오롱글로벌·동화기업·여천NCC 등이, A3급에는 이랜드월드·동부건설·쌍용건설·효성화학 등이 포함돼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와 중앙그룹 사태 이후 금융당국 제재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증권사들이 A3급 비우량물 취급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며 "홈플러스 등과 달리 재무상태가 좋은데도 A3급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등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월1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

이 같은 사례는 과거에도 되풀이됐다. 2011년 LIG건설·삼부토건 사태로 건설사 CP 발행이 급감했다. LIG건설·삼부토건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면서 건설사 CP 전체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1년 1분기 건설사 CP 발행액은 약 1조3000억원으로 월평균 4000억원 수준이었으나 LIG건설·삼부토건 사태 이후 4월 중순까지는 700억원에 그쳤다. 신용등급 A3+ 이하 비우량 건설사의 CP 신규 발행도 어려워졌다. LIG건설·삼부토건처럼 A급 이하인 건설사 가운데는 회사채·CP 발행을 추진하다 중단한 곳도 나왔다.

2년 뒤인 2013년 동양그룹 사태도 마찬가지다. 동양그룹이 부도 위험을 숨기고 회사채와 CP를 대규모로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사건이다. 이후 회사채 투자심리 전반이 얼어붙으면서 AA급 이상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 등 일부만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책금융 지원과 함께 증권사의 상품 취급을 위축시키는 감독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발행기업의 신용위험에 따른 손실과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증권사가 적절한 신용심사와 설명의무를 이행했는지에 따라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해져야 신용사건 발생 가능성만을 이유로 상품 취급을 일률적으로 중단하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소비자 보호 추세는 이해하지만 증권사 입장에서는 '한 번 터지면 다 물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나쁜 증권사로 낙인찍힌다는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며 "결국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만큼 금융당국에서 불완전판매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사건마다 '연좌제'…A3급 기업 악순환 끊으려면

국내외 단기자금시장 자금공급 개선 방안/그래픽=윤선정

대형 신용사건 이후 같은 신용등급의 다른 기업들까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기업별 신용위험을 구분하고 자금공급 경로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운영 중인 회사채·CP(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의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발행가격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층을 넓혀 신용등급에 따른 투자 기피를 완화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5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해도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한 최대 10조원 규모의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신용보증기금의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등을 포함한 채권·단기자금시장 안정 프로그램의 전체 지원 규모는 최대 37조6000억원이다.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은 2020년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해 도입된 시장안정 조치에서 출발해 연장을 거듭해왔다. 금융위는 2023년 A1~A3급 CP와 전자단기사채(전단채)를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운영기간을 2024년 말까지 연장했다. 이후에도 프로그램을 유지했으며 지난해 12월 올해 말까지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회사채·CP 매입 등 시장안정 프로그램 전체를 통해 비우량물을 중심으로 약 11조8000억원이 신규 매입됐다.

정책금융 지원체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A3급 CP·전단채 발행잔액은 홈플러스 사태 이전보다 크게 감소했다. 시장 전체에 공급되는 유동성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개선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 만큼 지원 효과를 세부 등급별로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은 CP와 전단채의 발행·신용평가 체계를 정비하고 시장정보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CP 신용평가에도 전단채처럼 발행한도를 명시해 등급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신용평가사 공시를 보면 전단채는 발행한도가 별도로 표시되지만 CP는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있다. 연구원은 실제 발행가격과 신용등급별 수익률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회사채 발행 위축과 CP·전단채 발행 증가에 따른 차환 위험을 경고하며 비우량 회사채의 투자수요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의존도를 줄이려면 회사채 시장에서도 다양한 신용도의 기업에 대한 투자수요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단기자금시장의 정보 투명성을 높이고 거래를 표준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자금공급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STEP'(유럽 단기채권 표준화 체계)을 통해 공통 기준을 충족한 단기채권의 발행액과 잔액, 발행수익률을 정기적으로 공개한다. 발행주체와 만기, 신용등급 등을 구분해 시장의 자금조달 여건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국내에 정보공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탁결제원과 코스콤 등을 통해 CP·전단채 발행정보가 제공되고 금융투자협회와 채권평가사 등을 통해 수익률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투자자가 실제 발행가격과 만기, 신용등급별 금리를 얼마나 쉽게 비교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는 지난해 11월 유럽 CP 시장 발전 보고서에서 발행·가격정보 통합과 거래 표준화, 투자자층 확대를 제안했다. 분산된 정보를 통합하고 발행·결제 절차를 표준화해 거래비용을 줄이는 한편 MMF(머니마켓펀드) 관련 규제와 투자 관행을 개선해 다양한 신용도의 기업이 시장에 참여할 여건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용사건의 충격이 다른 기업의 자금조달에까지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며 "단순히 A3급 상품 판매를 늘리는 것보다 투자자의 위험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강화하고 자금공급 경로를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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