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횡포 막겠다고 관제 시장으로 바꿀 참인가."
‘배달의민족’(배민)의 수수료 개편 논란을 바라보는 정보기술(IT) 업계의 심정은 착잡하다. 민간 배달앱을 견제하겠다며 이곳저곳에서 공공앱 도입을 공론화하고 있어서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불을 붙였다. 이 지사는 배민 수수료 개편을 아예 ‘독과점 횡포’로 규정하고 공공 배달앱 개발하겠다고 공언했다.
IT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에겐 일시적 청량감을 줄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사업 성공 가능성이 낮아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이같은 시장 개입 움직임은 정치적 '표(票)퓰리즘'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정치가 혁신 생태계를 무력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주식회사를 중심으로 민관 합동 전담팀(TF)를 구성해 이달 중 공공배달 앱 개발사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군산시가 선보인 ‘배달의 명수’ 처럼 수수료와 광고료를 받지 않는 공공 배달앱을 통해 민간 사업자들의 독과점 지위 남용을 견제하는 동시에 지역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공공 배달앱 사업을 꺼내든 건 이 지사 뿐 아니다. 안양과 청주, 세종시 등 총선 출마 후보자들이 공공 앱 개발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여권은 배달앱 수수료를 낮추는 특별법제정까지 거론한 상황. 이 공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고사위기에 빠진 소상공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배달앱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걸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본다.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등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란 비판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대표 변호사는 “배민 수수료 개편이 소상공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비판 여론에 휩쓸려 공공기관, 지자체장, 정치인들이 공공앱을 개발을 주장하는 건 극히 경솔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령, 백화점이 비싸면 백화점을, 자동차가 비싸면 자동차를 정부가 만드는 식이라면 우리나라 산업 대부분은 국유화돼야 하지 않나”라며 꼬집었다.
IT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정치적 표퓰리즘이 혁신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국회 통과한 ‘타다금지법’(운수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렌터카 기반 호출 서비스 ‘타다’는 '혁신성이 없다’, ‘꼼수 영업택시’라는 논란도 이어졌지만 서비스 초기 정부가 ‘합법’으로 유권 해석했고, 불법 논란 이후 1심 재판부도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4월 총선을 앞두고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여야가 서둘러 운수사업법을 통과시켜 불법 낙인을 찍었다. 2018년 카카오가 정부의 유권 해석에 따라 ‘카풀’(승차공유) 사업에 나섰다 택시업계 표심에 기댄 정치권의 개입으로 스스로 사업을 접게 한 사례와 유사하다.
배민도 다를 바 없다. 배민의 수수료 체계가 문제가 있다면 기존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법령으로 이를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진행 중인 배민 M&A(인수합병) 심사에 반영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심사나 검토없이 여론재판으로 위법을 규정해 또다른 입법 규제에 나서거나 공공앱으로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건 지나친 표퓰리즘적 발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표심을 우선한 정치권의 성급한 시장 개입이 혁신 생태계를 교란하는 건 물론 창업 의지를 꺾고 투자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스타트업 CEO(최고경영책임자)는 “한쪽에서는 혁신과 공정을 주장하는 정치권이 다른 쪽에서는 상식에 반하는 시장 개입을 서슴없이 추진하고 있다”면서 “혁신산업이 기존 산업과 충돌하고 갈등을 빚을 때마다 구 산업 표심에 기댄 정치권 개입이 지속되는 한 혁신생태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