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 없이 색 내는 신기술…위변조 방지 넘어 예술시장까지 넘본다

류준영 기자
2026.10.14 05:00

[2026 K-프리미어 딥테크 페스타]①
김신현 카이스트(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환경·퇴색 걱정 없는 구조색 기술 개발로 주목
"위변조 방지부터 예술 소재까지 활용처 다양"

[편집자주]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이 보유한 딥테크(첨단기술)와 사업화 유망기술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동 설명회가 코엑스에서 열린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는 오는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B홀에서 '2026 K-프리미어 딥테크 페스타'를 개최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행사는 4대 과기원의 우수 연구개발(R&D) 성과를 기업에 소개하고 기술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통해 기업의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다. 행사 무대에 오를 유망기술을 개발한 과기원 교수들을 만나 핵심 기술의 경쟁력과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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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김신현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사진=카이스트 /사진=류준영

종이에 인쇄한 그림도, 건물 외벽의 페인트도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랜다. 색을 내는 화학 색소가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분자 구조가 바뀌는 탓이다.

김신현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이 문제를 색소가 아닌 '구조'로 풀었다. 간단히 말해 그 자체로는 색이 없는 투명한 소재에 머리카락 굵기 10분의 1 수준의 반구형 미세구조를 새겨 색을 낸다. 김 교수는 "구조만 유지되면 색이 영구적으로 지속돼 퇴색 걱정이 없다"며 "색소를 합성하는 과정의 환경 문제나 인체 유해성도 덜 수 있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나노 대신 '마이크로 돔'…공정은 쉽게, 색은 정교하게

구조색은 몰포나비 날개나 오팔처럼 물질 내부의 규칙적인 구조가 빛을 간섭시켜 나타나는 색을 말한다. 같은 소재라도 구조만 바꾸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

김 교수는 학생 시절부터 20년 넘게 구조색 연구라는 한 우물을 파왔다. 100나노미터(㎚) 크기 입자를 3차원으로 배열하는 기존 기술은 한국조폐공사와 함께 개발해 강원랜드 카지노칩 등에 이미 적용됐다. 다만 공정이 까다롭고, 한 가지 색 패턴은 쉬워도 여러 색이 섞인 정교한 그래픽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새 기술은 색을 만드는 방식부터 바꿨다. 김 교수는 "자연을 모방한 기존 방식과 달리 자연계에 없는 원리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지름 10마이크로미터(㎛) 안팎의 작은 반구를 뒤집어 놓은 형태를 활용한다. 빛이 반구의 옆면으로 들어오면 둥근 표면을 따라 반사돼 되돌아간다. 이때 서로 다른 경로를 지나온 빛이 만나 간섭하면서 특정한 색이 나타난다. 색을 바꾸기 위해 별도의 색소나 재료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반구의 크기만 바꾸면 다른 색을 만들 수 있다. 크기가 다른 반구를 다양하게 섞어 배열하면 물감을 혼합하듯 훨씬 다채로운 색을 구현할 수 있다.

제작에는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공정을 활용했다. 먼저 자외선에 반응하는 고분자를 이용해 미세한 기둥을 만든 뒤 열을 가한다. 그러면 고분자가 녹아내리면서 표면이 둥글게 변해 반구 형태가 된다. 반구의 크기와 위치를 미리 설계할 수 있어 한 번의 공정만으로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색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약 20만개의 미세반구를 이용해 색소 없이 손톱 크기로 재현된 “일월오봉도”/사진=김신현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빛의 각도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일월오봉도”/사진=김신현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 기술로 조선시대 '일월오봉도'를 손톱 크기에 재현했다. 해상도는 최신 LED 디스플레이에 준하고, 대형 스크린에 투영할 수도 있다. 한쪽 방향에서만 색이 보이고 반대편에서는 투명한 '야누스' 특성도 지녔다. 김 교수는 "기존 기술로는 어려웠던 고해상도 컬러 그래픽을 구조색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손채림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한 이 연구는 지난해 2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실렸다.

위변조 방지·프리미엄 패키징…"새 예술 장르도 가능"

김 교수는 구조색이 화학 색소를 그대로 대체하기보다 고유의 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발색 원리가 달라 색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특정 용도를 겨냥해 개발한 기술은 아니라면서도 여러 활용처를 꼽았다. 이를테면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 문자를 새길 수 있어 정품 인증 같은 위변조 방지 소재로 쓸 수 있다. 빛의 경로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특성을 살리면 광학 소자나 센서로도 응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과학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예쁘다"며 "고급스러운 느낌이 필요한 프리미엄 패키징이나 인테리어 소품, 굿즈, 차량 실내 소재에도 어울린다"고 말했다.

색소 없이 재현된 명화: “인상, 해돋이” (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우)/사진=김신현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김 교수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기술이전 분야는 예술 산업이다. 물감 대신 구조색을 활용해 손톱만 한 크기의 작품을 만들고, 이를 현미경으로 확대해 감상하거나 벽면에 투영해 전시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 작가들과 협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미세 구조를 다르게 설계해야 하는 만큼 대량생산 제품과 차별화된 한정판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기대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사업화 파트너 발굴과 양산 체계 구축이다. 예술품과 달리 패키징·보안 소재는 대량생산이 관건이어서다. 김 교수는 "학교 단독으로는 어렵고, 기술에 진짜 관심 있는 기업을 찾아 함께 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행히 공정이 디스플레이용 필름으로 이미 대량생산되는 마이크로렌즈 어레이와 비슷해 양산 문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설명이다. 보안인쇄·디스플레이·화장품·명품 패키징 업체와 포토카드 굿즈를 만드는 엔터테인먼트사, 스마트카 기업이 눈여겨볼 만한 기술이다. 김 교수는 오는 29일 서울 코엑스B홀 플러스 스테이지에서 열리는 'K-프리미어 딥테크 페스타'에서 이 기술을 직접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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