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문턱을 넘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바이오 코리아가 블록버스터(판매효과가 막대한 의약품) 신약을 내놓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장익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FDA 문턱'을 먼저 언급했다.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시장인 동시에 신약 진입이 가장 까다로운 미국을 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바이오 코리아 세계 진출이 시작된다는 것. FDA에서 7년간 바이오의약품 심사관으로 근무한 이 교수는 "민·관·학 경계를 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국형 신약의 세계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록버스터 신약을 위한 민·관·학 공동 보조는 이제 첫 발을 뗀 상태다. 정부는 지난 3월 관계 부처 실장급 공무원과 산·학·연 민간위원 20명으로 구성된 '바이오특별위원회' 발족을 통해 '바이오컨트롤타워'를 마련했다.
올해 바이오 연구개발(R&D)에 2007년 대비 75% 늘어난 2조8000억원을 투자하는 한편, 허가제도 개선으로 바이오의약품 개발 기간을 30% 가량 단축하기로 했다. 민·관·학 모두 바이오 신약 하나가 국가 경제에 미칠 막대한 파급효과를 인식하고 머리를 맞대 대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신약 개발의 '허리' 강화하라=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것이 바이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교수는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의 '허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초연구 부문에서 좋은 논문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의약품 개발로 응용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정부 투자는 주로 신약 개발 단계에 집중된다"며 "기초연구와 개발 양 끝단이 따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바이오의약품 업체들이 기업 단독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경우는 전체의 41%에 육박한다. 외부 기초연구를 토대로 한 개발이 절반이 넘는 글로벌 바이오 업체와의 격차가 크다.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기초연구를 발굴해 신약 개발의 토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최근 별도 연구 조직을 구성한 한미약품과 동아쏘시오홀딩스가 대표적이다. 남수연 유한양행 연구소장은 "학계 연구자들과 기초연구가 실제 신약 개발로 연결될 수 있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과 학계의 공동 보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국가 차원에서 기초 연구가 신약 개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중계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클러스터' 중심으로 민·관·학 시너지=민·관·학이 지리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바이오클러스터' 조성도 '한국형 신약' 개발의 선결 과제다.
주광수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대표는 "해외에서는 오래 전 부터 신약 R&D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바이오클러스터를 통한 협력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영국 캠브리지, 일본 고베 등 바이오클러스터가 대표적이다. 케빈 신 제넨텍 항암제 파트너링 부문 부사장은 "회사 창립 초기부터 남샌프란시스코(South San Francisco) 근교 스탠포드대학과 UCSF 등에서 회사 성장에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기 쉽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클러스터에서의 교류는 회사 성장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3개 주립대학(UCSF, UC버클리, UC산타크루즈)이 공동으로 조성한 'QB3'는 학계가 중심이 돼 형성한 클러스터다. 캐스퍼 모스만 QB3 마케팅 디렉터는 "지역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다면 QB3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학내에서 진행된 바이오 연구가 상업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창업과 연구를 돕는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글로벌 위상을 감안하면, 정부가 바이오클러스터 조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선진국 바이오클러스터를 따라잡기 위해 '플러스 알파'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주광수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대표는 "법인세율을 낮추고 감면기간을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후발주자인 싱가포르와 아일랜드는 각각 17.5%, 12.5%에 불과한 법인세율을 앞세워 자국 클러스터에 로슈와 화이자 등 글로벌 대표 제약·바이오사를 빨아들이고 있다. 세제 혜택으로 몰려든 글로벌 기업은 클러스터 내에서 활발한 기술 교류로 해당 국가 바이오 산업의 살을 찌운다.
◇바이오 전문인력 육성 시급=전문가들은 '바이오 전문인력 육성'도 한국형 바이오 신약 개발을 위한 장기 포석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바이오 생산 부문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하다. 이장익 교수는 "전국 35개 약대 가운데 바이오의약품을 교육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며 "국내 바이오업체에서 제조·품질관리를 하는 약사 대다수가 바이오의학을 배우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바이오 전문인력을 육성한다. 아일랜드는 정부 투자로 교육시설을 만들어 바이오 생산·품질 전문 인력을 육성 중이며 싱가포르는 전액 국비로 18개월간 바이오생산 인력을 육성해 자국 바이오 기업에서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터 준다.
이 교수는 "블록버스터 신약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초연구부터 개발, 생산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플랫폼'이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각 단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