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신약 개발 규정에 남아 있는 '동물시험'이라는 표현을 '비임상시험'으로 바꾸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얼핏 단어 하나를 고치는 수준으로 보이지만 오가노이드와 장기칩, 인공지능(AI) 기반 예측 모델 등 비동물시험법을 의약품 개발의 공식 평가 수단으로 활용할 규제 기반을 넓혔다는데 의미가 있다. 한국 역시 관련 시험법을 규제에 활용하기 위한 제도 정비 및 제약사의 도입 움직임이 이어지는 중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FDA 현대화법 3.0'(FDA Modernization Act 3.0)을 통과시켰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시험계획(IND) 관련 규정에 사용된 동물시험(Animal Testing)을 보다 포괄적인 비임상시험(Nonclinical Testing)으로 변경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번 법안은 2022년 제정된 FDA 현대화법 2.0의 후속 조치다. 당시 미국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시험을 의무화한 연방법 조항을 삭제하고 세포 기반 분석과 컴퓨터 모델 등 비동물시험 자료도 임상 진입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FDA 하위 규정에는 여전히 동물시험을 전제로 한 표현이 남아 있어 상위 법률과 실제 심사 규정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다.
현대화법 3.0은 이를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비동물시험법을 법적으로 제출 가능한 자료에 그치지 않고 FDA가 실제 심사에서 평가할 수 있는 선택지로 안착시키기 위한 규정 정비다. 동물시험을 금지하거나 비동물시험으로 일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물질과 평가 목적에 따라 다양한 비임상시험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제상 문턱을 낮추는 조치다.
FDA도 비동물시험 자료의 활용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단일클론항체를 시작으로 동물시험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로드맵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3월 새로운 접근법(NAM, New Approach Methodologies)의 검증 기준과 활용 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NAM에는 인간 유래 세포·조직 분석과 오가노이드, 장기칩, 컴퓨터 시뮬레이션, AI 기반 독성예측 등이 포함된다.
특정 기술 하나로 동물시험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여러 시험에서 얻은 자료를 종합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FDA는 동물시험과 인간 유래 분석, 컴퓨터 모델 등에서 확보한 결과를 함께 검토하는 '증거 가중' 평가를 제시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일부 항암제의 비임상 안전성 평가에서 불필요한 동물시험을 줄이고 NAM을 포함한 증거 가중 방식을 활용하도록 하는 지침 초안도 내놨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동물모델이 사람의 질환과 약물 반응을 완전히 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에서 출발했다. 동물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한 후보물질도 임상에서 예상하지 못한 독성이나 유효성 부족으로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간 유래 세포와 조직을 기반으로 한 시험법을 함께 활용하면 임상 결과의 예측력을 높이고 가능성이 낮은 후보물질을 조기에 걸러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국내에서도 비동물시험법을 규제에 활용하기 위한 기반 마련이 진행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국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를 중심으로 관련 시험법의 표준화와 검증, 규제 수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NAM의 동향과 규제과학적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포럼을 열었고, 이달에는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를 위한 실습 교육도 진행했다.
관련 시험법을 범부처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입법도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에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과 검증, 보급 및 이용을 지원하는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사업을 연계해 연구개발부터 표준화와 규제 활용까지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국내 업계도 관련 기술을 신약 개발에 도입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오가노이드 기업들을 협력 후보군으로 놓고 전임상 단계에서 기존 동물시험과 대체시험을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JW중외제약은 미국 템퍼스AI의 환자 유래 종양 오가노이드와 임상·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해 항암 신약후보물질과 치료 반응 예측 바이오마커를 평가하고 있다. 동아에스티 역시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와 환자 유래 종양 오가노이드 및 AI를 활용해 항암 후보물질 반응성을 평가하고, 뇌 오가노이드로 난치성 뇌질환 후보물질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있다.
다만 비동물시험이 단기간에 동물시험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규제 자료로 활용되려면 결과의 재현성과 표준화, 시험기관 간 일관성이 확보돼야 한다. 이에 업계 역시 당장의 변화보다는 향후 방향성에 초점을 맞춰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신 독성과 약동학, 면역반응처럼 여러 장기와 생체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살펴야 하는 영역은 여전히 단일 비동물 모델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당분간은 기존 동물시험과 검증된 NAM을 병행하고, 과학적 근거가 축적된 영역부터 동물 사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