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상 전망과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가 맞물려 신흥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흥시장이 한동안 안정을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신흥시장이 수렁에 빠졌다며 신흥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를 문답형식으로 짚어봤다.
◇신흥시장 요동치는 이유는
신흥시장에선 최근 주가와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주요 신흥국의 증시와 통화 가치는 올 들어 각각 10% 이상 떨어졌다. 특히 말레이시아 링깃,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는 역사적 저점으로 추락했다. 여러 신흥국의 생명줄인 원자재 가격도 급락세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최근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게 직격탄이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금융시장 자유화 조치의 하나로 보지만 성장둔화 및 디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를 부추겨 신흥시장 전반에 대한 투매를 촉발했다.
장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급락세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연내 금리인상 전망이 악재가 됐다. 두 악재는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11일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하기 전부터 신흥시장을 뒤흔들었다.
◇신흥국별 영향 및 대응은
일련의 악재가 모든 신흥국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러시아, 남아공, 칠레, 콜롬비아 등 원자재 생산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큰 타격을 입은 데 반해 한국을 비롯한 일부 신흥국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오히려 수입 부담을 덜게 됐다. 또 인도와 폴란드, 헝가리 등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중국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제한적이고 경제여건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터키, 러시아, 브라질 등은 정치적 리스크(위험)에 더 취약하다.
위안화 절하는 각국의 통화약세 유도 경쟁, 이른바 '환율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카자흐스탄은 이미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맞서 환율 규제를 완화했다. 나이지리아도 곧 뒤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신흥시장이 근본적인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한 경제구조 개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문제는
부채와 외자이탈을 둘러싼 우려도 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신흥시장의 채무는 약 4조5000억달러로 지난 5년간 2배나 늘었다. 대부분 '달러 빚'으로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는 신흥시장의 채무 부담을 가중시킨다. 주요 6개 통화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FRB의 금리인상 전망에 올 들어 5% 넘게 올랐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자본이 달러 자산으로 복귀하면서 신흥시장에선 지난 13개월간 1조달러에 가까운 자본이 빠져나갔다. 유출액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2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신흥시장의 자본유출 속도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채권시장 향방은
신흥시장의 주식, 통화 가치가 동반 추락하고 있는 데 비해 채권은 비교적 탄탄한 모습을 띠고 있다. 신흥시장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달러를 차입해 현지 통화에 대한 약세 압력을 떠받치고 있다. FRB가 금리인상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관측 속에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흥국 채권 수요가 아직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흥시장 국채와 회사채에 대한 위험투자 수요가 최근 시들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사이먼 루 퐁 픽텟 자산운용 신흥시장 채권 부문 책임자는 "(신흥국 채권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다"며 신흥시장 통화에 대한 투매가 채권 등 다른 자산으로 번지면 '대학살'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 위기 재현되나
FT는 1990년대 말에 터진 아시아 외환위기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상황이 심각한 건 아니라고 진단했다. 신흥시장 위기가 선진국으로 전이될 조짐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신문은 그러나 신흥시장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의 성장둔화를 이유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연장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ECB의 양적완화는 내년 9월까지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FT는 9월이 신흥시장 위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에서는 FRB가 빠르면 9월16-17일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본다. 미국 노동부가 9월4일에 발표하는 8월 고용지표가 금리인상 여부를 가늠하는 실마리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인민은행이 곧 위안화 추가 절하에 나설 것이라며 위안화 절하 폭과 속도가 신흥시장 위기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으로 내다봤다. 바클레이스는 최신 투자노트에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내년 말까지 8%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