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하워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톰 헌들리씨(28)는 연봉 4만5000달러(약 5114만원)의 특허출원회사에 2015년 취업했다. 취업한 지 5년차지만 아직까지 그에게 여유는 없다.
그는 대학시절 연방정부 대출 최대한도인 3만9000달러(약 4430만원)를 빌려 학자금으로 썼고 지금은 매달 500달러(약 56만원)씩 갚고 있다. 그의 어머니도 그의 대학등록금 지원을 위해 정부에 6만2000달러(약 7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헌들리씨는 이를 모두 갚기 위해 여전히 저소득 지원주택에 살면서 돈을 아끼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지고 있는 학자금 빚은 총 1조5000억달러(약 1704조원). 빚진 개인은 물론 가계와 미국 경제 전체를 짓누르는 부담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이 같은 학자금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학자금 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더 이상 빚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초에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연방 정부의 지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대학들이 비용을 올리도록 해왔다"며 "대학들은 교육을 더 유용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현재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이 대부분 저소득층과 흑인이라는 것. 이들이 빚을 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예 대출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에게 대출을 제한하면 이들이 대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해, 사회 계층화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흑인 비율이 높은 대학일수록 졸업생의 학자금 빚이 더 많았다. WSJ가 2017년 대학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통흑인대학(HBCU)의 졸업생들은 다른 일반 4년제 대학교 졸업생보다 32% 많은 2만9000달러(약 3300만원)의 학자금 빚을 떠안고 학교를 떠났다. HBCU는 미국 내 흑인 지역사회의 교육을 위해 1964년 이전 세워진 대학으로, 미국 내 전체 4년제 대학의 5%를 차지한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 상환률이 가장 낮은 100개 학교 중 절반 이상을 HBCU가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신종 금융상품도 나오고 있다. 자신이 미래에 벌어들일 수입의 일부를 주기로 하고 학자금을 받는 '소득 배분 약정(ISA)' 상품이다. 자신이 미래에 많은 연봉을 받을수록 투자자가 이득을 보기 때문에 학자금을 조달하려면 성실성 등 자신에 대한 투자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대학생을 미래의 '소기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수익률은 학생의 전공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ISA 프로그램을 도입한 퍼듀 대학의 경우 영어 전공 학생은 10년동안 미래 수입의 4.52%를 투자자에 돌려주는 조건으로 1만 달러를 빌릴 수 있지만 화학공학과 학생은 7년간 미래 수입 2.57%만 돌려주면 된다.
투자자는 학생이 고액연봉을 받을수록, 상환기간 동안 연봉이 오를수록 더 많은 금액을 돌려받는다. 단 연봉이 2만달러에 미치지 못하거나 구직활동을 계속 하는 도중에는 한푼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학생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ISA가 학생들이 많은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광고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서 "학생들은 보통 빌린 원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2017년 졸업해 연봉 3만8000달러(약 4300만원)를 받는 샤를로트 허버트씨(23)는 매달 월급의 10%에 해당하는 312달러(약 35만원)를 투자자에 돌려주고 있다. 그가 문예창작과였기 때문에 공대생보다 2.5%포인트 높은 비율을 적용받았다. 허버트씨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회에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